서정시인 듯, 때론 사회시인 듯… 전통시조에 녹여낸 ‘상실의 정서’

입력 : ㅣ 수정 : 2020-03-31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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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가 이송희 시인 새 시집 발간
다양한 소재 시조 영역으로 끌어와
이송희 시인

▲ 이송희 시인

서정시인가 하면 사회시다. 시인가 하면 시조이고 시조인가 하면 시다. 등단 이래 시인과 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송희 시인이 시집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시인동네)를 냈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시인의 시는 상실감을 연원으로 하는 서정시가의 전통을 잇는다. ‘그녀의 빈방에/ 검은 눈이 내린다//(중략) 막 태어난 그리움은 허공에서 자란다// 얼음이 된 사랑과/ 물이 된 그리움// 사르르 녹아내리는/ 화석이 된 울음을’(88쪽, ‘첫눈’)처럼 그리움이 돼 녹아내린 사랑을 표현하는 식이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어둠과 울음, 녹아내림으로 표상되는 상실의 정서가 암암리에 박혀 있다. 상실의 대상은 주로 ‘당신’이지만, ‘너와 나,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말의 세계’(33쪽, ‘외눈’) 같은 언어의 세계이기도 하다. 언어를 도구로 쓰는 시인에게 언어를 잃어버린 세계는 곧 세상 전부를 잃은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의 시는 마냥 내면의 서정성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파 시의 면모도 보인다. 그는 시집에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호명한다. ‘사각지대’에서는 학교폭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뤘다. ‘교복 입은 사내들이 명령을 잡고 오른다// 어제의 일기는 유서가 되었을까// 책갈피에 쏟아졌던 코피가 말라갈 때// 일진이 좋지 않은 날, 칼날이 파고든다’(66~67쪽).

‘어디로 흘러가는 시간에는 문이 없’고 ‘미래의 공무원들만 도서관을 메웠다’(62쪽)는 취업준비생들의 고단함을 형상화한 시 ‘그날’이나 그들의 미래와 다름없는 해고 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사막의 표정’, 일용직의 삶을 그린 ‘엑스트라’ 등 노동에 관한 시도 돋보인다.

이송희의 시는 전통 시조의 현대적 가능성을 최대치까지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조의 형식을 빌려 변용하되, 훨씬 더 다양한 소재를 시조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시집 제목처럼 시인 자신이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끊임없이 세상을 관찰해 온 결과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3-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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