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돕는다는 이유로… n번방 ‘가해자 보복’ 도 넘다

입력 : ㅣ 수정 : 2020-03-2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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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범죄자 찾아 신고하는 ‘자경단’, 일부 가해자 신상 정보까지 털어 협박
‘눈에는 눈’식 보복 영상… 처벌받을 수도
성범죄자 검거 돕는 순기능 왜곡 우려
경찰 “목적 어떠하든 수사할 수밖에”
“n번방에 입장한 26만명 모두가 공범” 2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공유 사건(n번방 사건)을 포함한 온라인 성착취 구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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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번방에 입장한 26만명 모두가 공범”
2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공유 사건(n번방 사건)을 포함한 온라인 성착취 구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시청한 성범죄 가해자들을 엄벌해야 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이들을 찾아 신상을 공개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른바 텔레그램 ‘자경단’이다. 그러나 일부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자경단 행세를 하며 가해자들을 협박해 알몸 영상을 찍게 하고 엽기 행각을 강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경단의 순기능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위법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만들어진 텔레그램 단체방 A에는 미성년 성착취 동영상을 구매하려는 남성의 신상정보가 수십 건 올라왔다. 이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 명시했다. 신상이 공개된 이들 대다수가 미성년자였다. 26일 기준 이 방의 구독자는 190여명이었다. 단체방 운영자는 이 방의 목적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자를 음지로 끌고 와 갱생시켜 양지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문제는 이 대화방에서 반성문을 든 미성년 가해자의 얼굴과 함께 나체 영상이 공개됐다는 것이다. 가해자로 하여금 컴퓨터를 열어 ‘메인보드’에 간장을 붓게 하는 등 엽기적인 행위도 ‘주문’했다. ‘박사’ 조씨의 성착취 범행을 모방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사적 보복인 셈이다. 이 대화방 운영자는 다른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협박할 거리 하나 잡고 천천히 죽이는 게 예술”이라며 “솔직히 사회정의보단 누군가의 사회적 인격을 살인하는 기분으로 한다”고 밝혔다. 또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성범죄자들은 갱생시키면 안 된다. 똑같이 만들고 노예로 써야 한다”며 “나보다 약하면 짓밟고 빼앗고 싶은 그 심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게 중론이다. 경찰 관계자는 “목적이 어떠했든 불법적 요소가 포착된다면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미성년자로 하여금 강제로 벗은 몸을 찍게 하고 유포한 만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텔레그램 성착취물을 적발하는 자경단은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활동인 데 반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를 위협·협박하고 급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자경단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뿐 아니라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왜곡된 성윤리를 바로잡고 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20-03-2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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