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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어떤 캐릭터도 남달랐던 배우 막스 폰 시도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어떤 캐릭터도 남달랐던 배우 막스 폰 시도우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3-10 05:04
업데이트 2020-03-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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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배우 막스 폰 시도우가 지난 2016년 5월 14일 제69회 칸느영화제 경쟁부문 출연작 ‘The BFG(Le Bon Gros Geant)’ 시사회에 참석해 레드카펫 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9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배우 막스 폰 시도우가 지난 2016년 5월 14일 제69회 칸느영화제 경쟁부문 출연작 ‘The BFG(Le Bon Gros Geant)’ 시사회에 참석해 레드카펫 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할리우드 오컬트영화 ‘엑소시스트’에 퇴마 의식을 집행하는 신부로 출연한 스웨덴 출신 배우 막스 폰 시도우가 8일(현지시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알리면서 “찢어지는 가슴과 끝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는 9일(현지시간) 전했다. 그의 영화 초창기는 스웨덴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과 함께 11편을 함께 만든 것이 거의 전부였다.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캐릭터를 연출했다. ‘제7의 봉인’과 ‘처녀의 샘’이 대표적이다. ‘제7의 봉인’에서 죽음과 체스를 하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베르히만의 페르소나’로 통할 정도로 둘은 각별했다.

미국 여배우 미아 패로우는 두 사람이 함께 보라보라섬에서 촬영할 때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애도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랍 대령을 연기해달라는 제의를 뿌리친 일화도 있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려고 대서양을 건넌 뒤 첫 출연한 영화는 1965년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위대한 생애’였다. 그를 국제적 명성으로 이끈 것은 1973년 ‘엑소시스트’에 출연하면서였다. 그리고 1980년 ‘플래시 고든’에서 악당 밍 더 머시리스를 열연했다. 그는 영국 신문 더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난 그 영화를 정말로 즐겼다. 어릴 적 그 만화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일종의 향수를 안긴 영화였다”고 털어놓았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1975년작 ‘제7의 봉인’에 출연해 죽음(벵크트 에케롯 연기)와 체스 한판을 두는 막스 폰 시도우. AFP 자료사진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1975년작 ‘제7의 봉인’에 출연해 죽음(벵크트 에케롯 연기)와 체스 한판을 두는 막스 폰 시도우.
AFP 자료사진
1973년 ‘엑소시스트’에서의 미렌 신부. AFP 자료사진
1973년 ‘엑소시스트’에서의 미렌 신부.
AFP 자료사진
1980년 ‘플래시 고든’에서 악당 밍 더 머시리스와 1983년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킬러 역으로 새로운 악당 캐릭터를 빚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AFP 자료사진
1980년 ‘플래시 고든’에서 악당 밍 더 머시리스와 1983년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킬러 역으로 새로운 악당 캐릭터를 빚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AFP 자료사진
2015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로르 산 테카를 연기한 막스 폰 시도우. 게티 이미지스
2015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로르 산 테카를 연기한 막스 폰 시도우.
게티 이미지스
폰 시도우는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도 출연해 사색하는 섬세한 킬러 캐릭터를 빚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당시 AP 통신은 다음과 같이 그를 소개했다. “키 크고 깡마른, 쑥 들어간 푸른 눈에, 길다란 얼굴, 창백한 안색에 깊고 억양 있는 목소리.”

그러나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배우로서 내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 부분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나온 것이다. 한 가지 유형의 캐릭터에만 갇힌다는 것은 너무 지루한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선 주로 ‘이국적인 악당’이나 ‘유럽출신 전문가‘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창조했다. 영화 ‘콘돌’에선 의뢰인의 부탁에 따라 냉정하게 암살 대상을 제거하지만 받은 지시 말고 불필요한 살상은 지양하는 독특한 킬러 상을 만들어냈다. 1998년 ‘정복자 펠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2011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각각 올랐다.

노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 2014년 ‘심슨 가족’에 목소리 출연했고, 2016년에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세 에피소드에 얼굴을 내밀었다. 또 모국어는 물론 영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가난한 시골 농부부터 유럽에서 온 암살자까지 폭넓은 캐릭터를 자연스러우면서도 맛깔나게 빚어낸 특별한 배우였다.

2007년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도드라지게 끌로 다듬은 모습을 스크린에 투영한 배우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면 따듯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남자이며,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길 거부해 온 경력에 대해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영화평론가 가이 롯지는 “한없이 가벼운 쓰레기에 커다란 무게감을, 무덤처럼 가라앉은 영화들에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배우”가 세상과 작별했다고 애석해 했다.

고인의 세례명은 칼 아돌프였다. 독일인 조상에 대한 경의였다. 그는 2003년 “전후 아돌프는 좋은 이름이 아니었다. (처음) 연극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은 칼 아돌프란 이름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더라. 해서 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며 조금 더 예술적으로 들리는 이름을 생각해내야 했다. 군대에 있을 때 어느날 저녁 막스란 이름의 인물을 연기하며 온갖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있었다.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그날 저녁 이후 소령은 날 보면 항상 막스라고 불렀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고인은 첫 번째 부인 크리스티나 잉가 브리타 올린과의 사이에 두 아들, 1997년 프로방스에서 재혼한 캐서린 브렐렛과의 사이에 아들을 둘 더 두고 5년 뒤 스웨덴 시민권을 버리고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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