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생]오스카를 발칵 뒤집어놓은 기생충, 동네가게도 들떴다

입력 : ㅣ 수정 : 2020-02-15 11:17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우리슈퍼’ 실제 촬영지 ‘돼지슈퍼’. 영화 흥행 이후 ‘기생충’ 팬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우리슈퍼’ 실제 촬영지 ‘돼지슈퍼’. 영화 흥행 이후 ‘기생충’ 팬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기생충’ 상 타는 장면 다 동영상으로 찍어놨어요. 갑자기 우리까지 유명인이 된 것 같아!”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돼지슈퍼’를 운영하는 김경순(73)씨·이정식(77)씨 부부는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타자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돼지슈퍼’는 영화에서 ‘우리슈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기택(송강호 분)의 아들 기우(최우식 분)는 친구 민혁(박서준 분)에게 과외를 넘겨받습니다. 기우와 민혁은 슈퍼 앞 테이블에서 소주도 한 잔 합니다. 슈퍼 옆에는 기택의 가족이 동익(이선균)의 집을 빠져나와 비를 맞으며 내려가던 계단도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10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기생충’은 최고상인 작품상을 포함해 각본상, 감독상, 국제극영화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썼습니다. 모든 국민이 열광하는 가운데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극 중 ‘우리슈퍼’의 실제 가게 ‘돼지슈퍼’ 사장 부부와 ‘피자시대’로 등장한 ‘스카이피자’의 사장입니다.

시상식 다음날 찾아간 두 가게는 ‘기생충’ 팬들과 단골손님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두 가게는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단골손님과 격의 없이 인사를 주고 받는 평범한 이웃이자 동네가게입니다.

●한 동네에서 45년 장사…터줏대감 ‘돼지슈퍼’
‘돼지슈퍼’를 운영하는 사장 부부 김경순(왼쪽)·이정식(오른쪽). 부부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돼지슈퍼’를 운영하는 사장 부부 김경순(왼쪽)·이정식(오른쪽). 부부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돼지슈퍼’는 동네의 터줏대감입니다. ‘돼지슈퍼’ 사장 부부는 같은 동네에서 45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지금 자리에 ‘돼지슈퍼’가 문을 연지는 35년입니다. 동네주민들은 아카데미 시상식 다음날에도 평범히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오전 11시쯤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 한 분이 돼지슈퍼에 들어와 계란 한 판과 두유 하나, 우유 두 팩을 구매하며 저녁 8시에 배달해달라고 말한 후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나 테레비에 돼지슈퍼 나오는 것 보고 깜짝 놀랐잖아”라며 들어오는 동네주민에게 김씨는 “어제부터 전화도 많이 왔어”라고 답했습니다. 대답하는 김씨의 입엔 함박 웃음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씨는 “어제는 같은 아현동 주민이라면서 앞으로 자주 오겠다는 전화도 왔었다”고 뿌듯하게 말했습니다.
돼지슈퍼 앞에 ‘기생충’ 실제 촬영 장소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돼지슈퍼 앞에 ‘기생충’ 실제 촬영 장소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영화가 인기를 끌자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이씨는 “어떤 사람이 가게 사진을 계속 찍더니 들어와서 음료를 하나 사더라. 어떻게 찾아왔냐고 물으니 영화 ‘기생충’이 너무 좋아서 촬영 장소를 찾아 강원도에서 왔다더라”고 회상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도 자주 찾아옵니다. 특히 일본인이 많이 온다는 사장 부부의 말을 증명하듯 이날도 일본인 팬이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날 오전7시40분 비행기로 한국에 왔다는 일본인 야마자키 켄이치(45)씨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돼지슈퍼부터 찾아왔습니다. 야마자키씨는 “‘기생충’에 나오는 실제 장소를 와보고 싶었다”면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엄청난 팬”이라며 들떠 말했습니다.
돼지슈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본인 관광객 야마자키 켄이치씨. 야마자키씨는 ‘기생충’의 열렬한 팬으로 ‘기생충’의 수상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달려왔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돼지슈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본인 관광객 야마자키 켄이치씨. 야마자키씨는 ‘기생충’의 열렬한 팬으로 ‘기생충’의 수상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달려왔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사장 부부는 결혼 이후 제대로 영화관 한 번 가보지 못 했습니다. 이씨는 “흑백영화 ‘심청전’을 본 기억만 난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부는 ‘기생충’을 계기로 영화관도 방문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자 영화사 측에서 사장 부부에게 영화표 두 매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모바일 예매권을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 했습니다. 영화관에서 한참 헤매던 부부는 결국 직접 돈을 내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김씨는 “영화에 우리 가게가 나오니 너무 좋았다”면서 “영화를 보니 예전에 어렵게 살던 기억이 나더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의 사랑방, ‘스카이피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스카이피자’도 돼지슈퍼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이곳은 영화에서 기택의 아들 기우와 딸 기정(박소담 분), 아내 충숙(장혜진 분)이 모의를 한 장소입니다. 기택 가족이 생계를 위해 접던 ‘피자시대’ 박스도 이곳에 쌓여있었습니다. 벽 곳곳에 붙여있는 봉준호 감독의 싸인과 사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생계를 위해 피자 박스를 접던 장면을 촬영한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생계를 위해 피자 박스를 접던 장면을 촬영한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사장 엄항기(62)씨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면서 온 식구가 시상식을 보는데 딱 상을 타더라”고 말하며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엄씨는 “처음엔 영화 제목이 ‘기생충’이고 ‘우리 가게가 세련되지도 않다’고 가족들이 걱정을 해서 적극적으로 설득했다”면서 우리 집에서 영화 촬영이 ‘당첨됐다’고 연락을 받을 때 기뻤다”고 말했습니다. 기택의 아내 충숙이 만드는 수세미는 엄씨가 파는 수제 수세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엄씨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엄씨는 “제과점을 하다가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겨서 2004년 피자·치킨 가게를 열었다”면서 “경기가 좋지 않은데 작은 가게이지만 먼길을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기뻐했습니다.
스카이피자 사장 엄항기씨의 뒤로 영화에 등장한 것처럼 피자박스가 쌓여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스카이피자 사장 엄항기씨의 뒤로 영화에 등장한 것처럼 피자박스가 쌓여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2004년 문을 연 스카이피자는 노량진역에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큰 길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집 근처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을 수 있어 줄곧 이웃 주민들의 사랑방이었습니다.

스카이피자도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로 외국인 손님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때 플랜카드도 만들어 걸었습니다. 엄씨는 “매일 1~3팀씩 일본,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중국 등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올 때면 번역기로 안내한다”면서 “영화를 찍을 때 붙여둔 스티커나 피자 박스를 보면 다들 반가워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제도 일본 관광객이 다녀갔고, 여의도에 산다는 직장인도 봉 감독의 팬이라며 방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카이피자 가게 내부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사인과 촬영 흔적이 남아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스카이피자 가게 내부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사인과 촬영 흔적이 남아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지난달부터 마련한 방명록에는 봉준호 감독의 팬들이 삐뚤한 한국어로 적은 소감이 가득했습니다. 영화 ‘괴물’을 보고 팬이 된 노르웨이 국적 사위가 영어로 방명록 소개를 썼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손님은 “기생충 영화 보고 왔어요”라고, 일본 팬도 “나는 한국영화의 팬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

      탐사보도 후원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