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러시아의 ‘그림자 전쟁’ 수행하는 ‘29155 부대’ 실체

러시아의 ‘그림자 전쟁’ 수행하는 ‘29155 부대’ 실체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20-01-26 08:00
업데이트 2020-01-26 08: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서방 정보기관, ‘29155 부대’ 활동 예측 불가
이미지 확대
두차례 독극물 공격을 당한 불가리아 무기거래상 엘미리안 게브레프의 2017년 모습. AFP 자료사진
두차례 독극물 공격을 당한 불가리아 무기거래상 엘미리안 게브레프의 2017년 모습. AFP 자료사진
러시아의 극비 암살 조직인 ‘29155부대’의 실체가 최근 서방 정보기관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영국·미국 등 서방 4개국의 정보 관리들은 이 부대가 얼마나 자주 운용되는지,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작전이 전개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경고한 것으로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25일 NYT 보도에 따르면 불가리아 무기 거래상인 에밀리안 게브레프(65)는 2015년 4월 27일 저녁 갑자기 독극물에 중독된 것을 깨닫고 병원에 한 달간 입원했다. 당시 아들과 그가 운영하는 회사 임원 한 명도 같이 중독됐다. 사경을 헤맸던 그는 “나와 아들, 회사 임원이 사라지면 회사는 저절로 공중분해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목엣가시’ 무기거래상 독극물 공격
이미지 확대
2018년 3월 화학공격을 당한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영국 솔즈베리 자택 부근을 방독면에 보호복을 착용한 요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솔즈베리 로이터 연합뉴스
2018년 3월 화학공격을 당한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영국 솔즈베리 자택 부근을 방독면에 보호복을 착용한 요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솔즈베리 로이터 연합뉴스
게브레프는 한달 뒤 흑해에 있는 자택에서 또 독극물 공격을 받았으나 보름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했다. 독극물 약효는 천천히 나타나지만 거의 치명적이다.

당시 불가리아 검찰이 사건을 살펴봤지만 살해 기도의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해 덮었다. 식사의 샐러드 나오는 야채 ‘루콜라’의 독성에 중독되지 않았느냐고 추정했을 뿐이다. 불가리아 독극물 회장 로젠 플레브넬례프는 “불가리아 정보기관들은 이 나라에 들어와 활동하는 러시아 암살팀을 탐지했다는 보고는커녕 들어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라며 “당시 불가리아 정보당국은 러시아 정보당국과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항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브레프는 러시아와 반(半) 전쟁 상태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팔고, 러시아가 오랫동안 장악한 무기 밀거래 시장에 침투했다. 나아가 무기 생산 공장을 사들이러 한 것이 러시아의 신흥 부호인 올리가르의 질투를 불러일으킨 ‘목엣가시’였다. 그는 “나는 늑대 무리에 던져졌을 뿐”이라며 지역 사업가나 정치인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암살 기도 사건에 대해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와 그 정보기관의 하부조직이 러시아의 적을 제거하고 서방을 무력화하고자 벌인 작전이라는 결정적 단서로 보고 있다.

#경제·군사에서 딸리는 러시아 ‘비대칭 전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임기 제한 철폐 등 개헌을 통해 3연임에 나설 가능성을 ‘강력히’시사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에서 가진 연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임기 제한 철폐 등 개헌을 통해 3연임에 나설 가능성을 ‘강력히’시사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에서 가진 연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세계 강국으로 다시 올려놓으려 하지만 여건이 녹록잖다. 러시아는 미국이나 경제적·군사적으로 미국 및 중국과 경쟁할 수가 없게 되자 푸틴은 비대칭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NYT가 분석했다. 그림자 전쟁이란 공식적 또는 직접적 전쟁이 아니라 자국의 개입 사실을 숨긴 채 특정 국가의 중요 시설을 공격하거나 요인을 암살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용병들이 시리아와 리비아,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러시아 해커들은 역정보를 흘려 분란을 일으키고, 선거에 개입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이런 요인 암살과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는 작전이 수년 동안 러시아 정보 요원들의 특별 집단인 ‘29155부대’에 의해 수행됐다고 NYT가 심도있게 폭로했다.

29155부대는 영국에 체류하는 전직 러시아 스파이인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2018년 3월 암살 기도, 2016년 몬테네그로의 군사 쿠데타 기도, 몰도바의 사회 불안 등의 작전 수행했다. 서방이냐 러시아냐 갈림길에 섰던 몬테네그로는 쿠데타 기도 1년 뒤에 나토에 가입했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국표 당시에도 영국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英 ‘이중 스파이’, 2차대전 후 첫 화학무기 공격
이미지 확대
2014년 9월 수많은 카탈루냐인들이 바르셀로나에 모여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로셀로나 AFP 연합뉴스
2014년 9월 수많은 카탈루냐인들이 바르셀로나에 모여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로셀로나 AFP 연합뉴스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은 2018년 3월 치명적인 신경중독 약물에 중독됐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기록상 첫 사례여서 영국 수사당국이 러시아 국방 정보기구인 GRU를 추적했다. 러시아인의 출입국 기록을 광범위하게 추적한 결과 ‘세르게이 페도토프’라는 이름의 러시아 여권을 사용하는 남자를 특정화했다. 그는 세르비아,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2015년 3번 불가리아를 방문했는데 2월, 4월, 그리고 5월 말이었다. 그의 두 번의 방문이 게브레프의 독극물 중독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가명의 이 남성이 GRU의 고위 장교인 데니스 세르지프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남성이 스페인을 여행했던 것으로 밝혀져 스페인 당국은 2017년 카탈루냐 독립 및 혼란과의 연계성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세르게이를 추적하던 영국이 불가리아 당국과 공조수사 결과 남성 3명이 무기 거래상 게브레프의 호텔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3대의 핸들에 약품을 묻히는 장면에 담긴 동영상을 확보했다. 동영상 화질이 선명하지 않아 화면 속 남성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연방수사국(FBI)에 분석을 맡겼다.

#러시아, 암살의혹 부인… 체첸 반군 살해도 의혹
이미지 확대
러시아 국방 정보기구 G.R.U. 엠블렘
러시아 국방 정보기구 G.R.U. 엠블렘
서방 정보기관들은 29155부대의 최고 지휘관은 안드레이 아베랴노프 소장이며, 모스크바에 있는 본부 위치를 파악했다. 서방에겐 게브레프에 대한 암살 시도가 29155부대의 정체를 파악하는 로제타스톤과 같은 중요 열쇠가 됐다.

물론 러시아는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한편 독일은 지난달 전직 체첸 반군 지휘관 살해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외교관 두 명을 추방했다. 그러나 이들이 29155부대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