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기 제작 20년 만에… 초음속 전투기 수출국으로 날다

입력 : ㅣ 수정 : 2020-01-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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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인사이드] ‘한국형 전투기 개발’ 도전사
첫 훈련기 ‘KT1’ 9년 만에 독자 개발
비행 중 좌석·캐노피 이탈 사고 극복
현재도 활용… 인니·터키·페루에 수출
2001년 마하 1.05 초음속기 T50 확보
무장 기능 높인 FA50 경공격기 제작
2013년 20억弗 이라크 수출 사상 최대
최초의 국산 군용기 KT1의 인도네시아 수출버전 KT1B(왼쪽). 개발 과정에서 캐노피와 전방 좌석이 날아가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해외에 수출하는 공군 훈련기로 자리잡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

▲ 최초의 국산 군용기 KT1의 인도네시아 수출버전 KT1B(왼쪽). 개발 과정에서 캐노피와 전방 좌석이 날아가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해외에 수출하는 공군 훈련기로 자리잡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

전투기는 첨단기술의 집약체로, 개발 성과에 따라 국력이 좌우될 만큼 중요도가 높은 무기입니다. ‘항공 선진국’만이 전투기 개발에 나설 수 있고 험난한 체계 개발 과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소형 항공기 개발 기술만 겨우 갖췄을 뿐 전투기 개발 여건은 ‘불모지’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등 3사가 힘을 합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라는 합작법인을 세우면서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우리는 1991년 12월 ‘KT1’ 기본훈련기 시제기(1호기) 초도비행을 시작으로 도전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3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을 버무려 항공 선진국 대열에 올랐습니다. 서울신문은 16일 그 도전의 역사를 되짚어 보려 합니다.

●이진호·염동선 소령이 1호 국산 군용기 조종

1991년 12월 12일 오전 10시. 국내 최초 독자 개발 훈련기인 KT1 1호기가 경남 사천 비행장에서 날아올랐습니다. 9년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자 기술진은 너나없이 감격해 눈물을 쏟았습니다. 당초 비행 경험이 많은 외국인 조종사를 탑승시키려 했지만, 개발자들은 “최초의 국산 군용기 첫 비행을 외국인에게 맡길 수 없다”며 강력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테스트 파일럿 교육을 받은 조종사 이진호·염동선 소령이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비행기에 직접 ‘웅비’라는 별칭을 붙여 줬습니다.
최초의 국산 초음속기 T50의 공중곡예기 버전 T50B 블랙이글스 편대가 하늘을 날고 있다. T50의 인도네시아 수출로 우리나라는 ‘세계 6번째 초음속기 수출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공군 제공

▲ 최초의 국산 초음속기 T50의 공중곡예기 버전 T50B 블랙이글스 편대가 하늘을 날고 있다. T50의 인도네시아 수출로 우리나라는 ‘세계 6번째 초음속기 수출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공군 제공

난관도 이어졌습니다. ‘웅비 명명식’을 사흘 앞둔 같은 해 11월 25일 1호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배면(뒤집기)비행을 시도하던 중 전방 좌석이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1000피트(305m) 상공에서 튀어 나가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대기하던 후방 좌석 조종사도 가까스로 탈출했는데, 원인은 영국 마틴 베이커사가 납품한 후방 좌석 불량으로 결론 났습니다.

●캐노피 날아갔어도 조종간 끝까지 지켜

1996년 10월에는 이륙한 지 불과 20분 만에 4호기 조종석 ‘캐노피’(유리 덮개)가 날아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1호기와도 인연을 맺었던 베테랑 이진호 중령은 ‘4호기마저 잃을 순 없다’는 생각에 숨쉬기 어려울 정도인 초속 100m의 맞바람을 뚫고 비상착륙을 시도했습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검게 변했지만, 어렵게 40~50도로 급강하하던 기수를 들어 올려 기체를 안정시킨 뒤 비상착륙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선 KT1은 현재 공군의 훈련기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2001년 인도네시아(20대), 2007년 터키(40대), 2012년 페루(20대) 등 해외 수출도 줄을 이었습니다. KT1 개발은 무장을 갖춘 ‘KA1’ 전술통제기 생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KAI는 2012년 KA1 10대를 페루에 수출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세네갈에 4대를 수출했습니다.

●KF16사업하며 대량생산·시험평가 기술 확보

우리 전투기 개발사업이 ‘조립’에서 발돋움했다는 사실, 이미 많은 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바로 ‘한국형 전투기 생산사업’(KFP)으로, 미국 록히드마틴에서 개발한 ‘F16’을 국내에서 면허생산해 ‘KF16’으로 도입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은 처음으로 항공기 대량생산과 체계적인 시험평가 기술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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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견학 막아 귀동냥… 생산정보체계 구축

물론 기술력이 저절로 갖춰진 건 아닙니다. 당시 기술진은 ‘공장 견학’을 막을 정도로 방문을 극도로 꺼리던 록히드마틴 측을 어르고 달래고 귀동냥하며 어렵게 컴퓨터를 활용한 ‘생산정보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고난도 있었습니다. 1997년 8월과 9월 KF16 전투기가 잇따라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조종사들은 무사했지만, 원인 규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정감사가 이틀이나 미뤄졌습니다. 결국 사고 원인은 해외 제작사가 만든 연료공급계통 부품 불량으로 밝혀졌고, 우리 기술진은 누명을 벗었습니다.

KT1과 KA1은 터보프롭기였기 때문에 공군과 기술진은 ‘초음속 항공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이에 1995년부터 국방부 요청으로 개발을 진행해 2001년 10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시제기를 확보하게 됩니다. 2003년 2월 18일 사천기지를 이륙한 T50은 마하 1.05(초속 360m)로 초음속 비행에 성공, ‘세계 12번째 초음속기 개발국’이라는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초음속기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속도’ 때문만이 아닙니다. 초음속 비행을 하면 초속 50m의 태풍급 강풍보다 ‘45배’ 강한 힘이 작용합니다. 음속 장벽을 돌파할 때는 공기저항력에 의해 ‘충격파’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매끄러운 공기역학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기체가 뒤틀리거나 조종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사업의 밑거름이 된 경공격기 FA50의 이라크 수출버전 FA50IQ가 이라크 상공을 날고 있다. 30년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우리는 초음속 전투기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이라크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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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사업의 밑거름이 된 경공격기 FA50의 이라크 수출버전 FA50IQ가 이라크 상공을 날고 있다. 30년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우리는 초음속 전투기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이라크 공군 제공

시험비행 조종사인 이충환·강철 소령은 “마하 1.0을 돌파하는 순간 흔들림 없는 비행 성능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고, 그제야 기술진은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이후 1만 7700파운드의 강력한 추력과 최고 마하 1.5의 고속기동이 가능한 명품이 탄생했고, ‘동급 훈련기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게 됩니다. ‘T50B’ 공중곡예기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를 위해 특별 제작해 2010년 보급한 기종입니다. KAI는 2011년 T50 16대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했고 우리나라는 ‘세계 6번째 초음속기 수출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KAI는 T50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TA50’ 전술입문기를 개발해 본격적으로 전투기 개발 채비를 갖추게 됩니다. T50이나 TA50도 무장이 가능하지만 공군은 노후화된 ‘KF5’ 제공호를 대체할 만한 ‘경공격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FA50’입니다. 공대공·공대지 미사일과 합동정밀직격탄(JDAM), 다목적정밀유도확산탄(SFW) 등의 정밀유도무기 투하 능력을 갖췄고 최고속도는 마하 1.5입니다. 전투기용 레이더, 전술데이터링크를 갖췄고 야간 임무수행 능력도 있습니다.
테스트 파일럿이 FA50 시험비행 중 기체를 점검하고 있다. FA50 개발로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초음속 전투기를 생산·수출할 수 있는 항공 선진국에 도달했다. 다음 목표는 한국형 전투기(KF-X)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

▲ 테스트 파일럿이 FA50 시험비행 중 기체를 점검하고 있다. FA50 개발로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초음속 전투기를 생산·수출할 수 있는 항공 선진국에 도달했다. 다음 목표는 한국형 전투기(KF-X)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

2013년 1호기를 시작으로 2016년까지 공군에 생산기들이 인도됐습니다. 2013년 이라크에 24대를 20억 달러(약 2조 3000억원)에 판매해 사상 최대 수출 실적도 올렸습니다.

우리는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나섰습니다. 최고속도 마하 1.81, 저피탐 능력,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갖춘 첨단 전투기 개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겁니다. 30년의 투지를 담아 여러분이 많이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2020-01-17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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