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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 쓰레기통… 썩은 음식·죽은 강아지, 양심까지 버릴 건가요

나는 지하철 쓰레기통… 썩은 음식·죽은 강아지, 양심까지 버릴 건가요

윤연정, 최영권 기자
입력 2020-01-15 22:44
업데이트 2020-01-16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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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와 함께 지하철 4곳 쓰레기 수거 해 보니

수거 1시간 지나자 13곳 쓰레기통 꽉꽉
비울 때마다 악취… 분리 수거도 길어져
CCTV 없는 화장실 등 상습 투기 장소
“영수증 찾아 적발하면 적반하장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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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승객이 마음대로 버린 생활쓰레기를 따로 모아 둔 봉투.
잠실역 승객이 마음대로 버린 생활쓰레기를 따로 모아 둔 봉투.
“물컹거려서 봉지를 열어 보니까 죽은 지 얼마 안 된 강아지 사체가 들어 있더라고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을 청소하는 이만심(57·여)씨는 아직도 그 감촉이 느껴지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씨는 “그나마 동물 사체는 드문 일이다. 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건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라면서 “대소변 기저귀, 생리대도 나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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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2시 건대입구역에서 서울메트로환경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승객들이 몰래 버리고 간 생활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2시 건대입구역에서 서울메트로환경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승객들이 몰래 버리고 간 생활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신문 기자 2명은 신림역, 동대문역, 잠실역, 건대입구역 등 지하철역 4곳에서 청소 노동자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웠다. 가정에서 나올 법한 생활쓰레기가 지하철 역사 곳곳에 나뒹굴었다. 오후 3시 잠실역에서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 지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100ℓ짜리 종량제 봉투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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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들어오는 신림역 7번출구 통로 가장자리에 먹다 남은 볶음밥과 탕수육이 곱게 포장돼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지하철로 들어오는 신림역 7번출구 통로 가장자리에 먹다 남은 볶음밥과 탕수육이 곱게 포장돼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원룸촌 인근 역엔 음식물 쓰레기 많아”

퇴근 시간대인 오후 7시, 신림역 역사는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다. 청소 카트를 앞으로 밀고 나가기 어려웠다. 1시간 전 이미 한 차례 쓰레기통을 비웠지만 대합실과 승강장에 설치된 13곳의 쓰레기통은 또다시 담배꽁초와 생선 가시, 요구르트병 등이 섞인 생활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몸을 구부려 쓰레기통을 비울 때마다 김치 썩은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났다.

오후 4시에 찾은 동대문역 사정도 비슷했다. 역 안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모아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분류하는 작업실은 아수라장이었다. 함께 청소를 한 서순임(64·여) 팀장은 “역 근처에 시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구매한 채소를 다듬고 남은 찌꺼기나 김치, 깍두기 등 국물이 있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린다”고 토로했다. 악취나 불쾌함은 물론이고 분리수거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린다.

생활쓰레기 무단 투기는 주로 출퇴근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단골 장소는 대합실 휴지통이나 폐쇄회로(CC)TV가 없는 화장실 등이다. 신림역이나 봉천역, 신대방역처럼 대학가나 원룸촌 근처 역에서도 음식물 쓰레기 투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10여년간 일했다는 장효숙(54여)씨는 “건대입구역 쓰레기통에서는 주로 집에서 먹다 버린 치킨 뼈나 빈 맥주 캔이 나온다”고 말했다. 역삼역이나 선릉역처럼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에서도 하루 평균 배출되는 쓰레기의 절반은 생활쓰레기다. 잠실역처럼 대형 쇼핑몰이 인접한 곳에서는 구매한 물건을 쌌던 포장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지하철 1~4호선을 담당하는 서울메트로환경 담당자는 “승객들이 집에서 들고 오는 생활쓰레기 때문에 청소 작업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무단 투기 금지 문구나 CCTV가 있어도 현장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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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역에는 승강장에 위치한 모든 쓰레기통에 ‘생활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지만 출근길 시간만 되면 먹다 남은 음식물, 뜯지도 않은 통닭이 버려져 있다.
노량진역에는 승강장에 위치한 모든 쓰레기통에 ‘생활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지만 출근길 시간만 되면 먹다 남은 음식물, 뜯지도 않은 통닭이 버려져 있다.
●“CCTV 확대·공동처리 시설 개선해야”

생활폐기물을 지정된 장소 외에 버린 사실이 적발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심한 경우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영수증을 찾아 투기범을 찾아내는 때도 있다. 잠실역을 청소하는 정막녀(64·여) 팀장은 “가게 영수증을 모아 몰래 버린 한 카페 주인이 있어 송파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고발했다”고 했다. 송파구 관계자는 “단순히 영수증이나 CCTV만으로 투기자를 특정하는 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일도 있다. ‘과태료를 물릴 수 있으니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청소 노동자의 부탁에도 “내가 낸 세금으로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뭐가 문제냐”며 대꾸하는 시민도 있다고 한다.

녹색연합 정책팀 신수연 팀장은 “역사 내 쓰레기통의 투입구를 좁혀 큰 쓰레기의 투기를 막거나 CCTV 설치를 늘려 무단 투기를 막을 필요가 있다”면서 “아파트와 달리 생활쓰레기 처리가 쉽지 않은 원룸이나 소형주택의 공동처리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2020-01-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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