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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도 출마합니다”… 경로당 민심까지 흔들었다

“90년대생도 출마합니다”… 경로당 민심까지 흔들었다

이하영, 기민도, 신형철 기자
입력 2020-01-08 23:14
업데이트 2020-01-09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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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출사표’ 청년 정치인들의 현장

‘청년 정치’가 21대 총선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정계에서는 ‘정치 문법을 모른다’, ‘조직력이 없다’는 등 젊은 정치인을 폄하하는 말들이 끊이질 않는다. 공고한 기성정치 풍토 탓일까. 20대 국회의원 당선 평균 나이는 55.5세, 30대 의원은 단 3명이었다. 청년 비례대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지역구를 뛰는 젊은 후보는 더 귀하다.

서울신문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간 큰 청년들’의 총선 준비 현장을 찾아갔다. 소속 정당은 달라도 이들이 행동으로 보여 준 메시지는 같았다. “깨끗하고 성실한 청년 정치, 이미 우린 충분히 준비됐다”였다. 세상도 변했다. 청년 정치인이 뜨는 현장마다 ‘젊은 정치’를 둘러싼 토론이 펼쳐졌다. 결론은 “이제 젊은 일꾼이 필요하다”였다. 낡은 구태 정치는 지쳤다. 2020년, 이제 ‘청년 정치’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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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박진호(30) 김포갑 예비후보가 7일 경기 김포시 김포5일장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유한국당 박진호(30) 김포갑 예비후보가 7일 경기 김포시 김포5일장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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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예비후보가 김포5일장 포장마차에서 점심을 먹는 시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 예비후보가 김포5일장 포장마차에서 점심을 먹는 시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경험多·열정甲’ 90년대생이 온다

“너무 이르게 선거 나온 거 아니냐? 어유 젊다.”

“무슨 소리, 나이 들어 나오는 인간들 말만 많고 일 안 해. 젊어야 힘쓰지.”

“맞아, 팍팍 밀어줄게 이왕 나온 거 끝장 봐야지!”

전국에 비가 내린 지난 7일 낮 12시쯤 경기 김포시 김포5일장 포장마차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던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설전이 일었다. 자유한국당 박진호(30) 예비후보가 인사를 돌자 밥상머리에 ‘정치인의 나이’가 화제로 오른 것이다. 격론 끝에 이들이 “일 잘하는 젊은 친구들이 나서야 한다”고 결론 내자 옆 테이블 손님들까지 맞장구를 쳤다.

한국당 김포갑 당협위원장으로 3년째 일하며 이미 지역 사정에 빠삭한 박 예비후보는 요일별로 지역을 나눠 매주 최소 한 번씩은 각 동을 샅샅이 훑는다. 시민들을 대하는 기술도 남다르다. 이른바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다. 대화를 원하는 시민에겐 친밀하게, 반대로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겐 차분하고 빠르게 인사한다. 과일을 팔던 상인은 “이 사람 열심히 하는 거 잘 안다. 우리 밴드(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미 소문 쫙 돌았다”며 웃어 보였다.

박 예비후보는 ‘바닥 정치’부터 시작했다. 2014년 대학 졸업 직후 한국당 김포시당에 입당했고 2018년 최연소 당협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돈이 없어 단체문자도 많이 못 보냈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대행사에 수백만원을 주고 만든 홍보 영상보다 친한 후배 밥 사주고 만든 그의 영상이 더 먹혔다고 한다.

그는 “현장을 뛰면 의외로 이젠 젊은 사람이 할 때 됐다며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전했다. 청년의 무기로는 추진력과 청렴함, 체력, 성실성 등을 꼽았다. 그는 “청년이 약자임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며 “당마다 오랫동안 정치를 공부하고 지역에서 죽어라 뛴 준비된 젊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예비후보는 “현재 정계에는 고위 관직을 거쳤거나 크게 성공한 분들이 계시지만, 정보가 넘쳐나고 이해관계가 다변화된 시대에 그분들이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저같이 평범한 청년이 오히려 더 시민들을 살뜰히 챙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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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장철민(38) 대전 동구 예비후보가 지난 6일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목에 걸고 대전역 앞 사거리의 도로가에 서 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38) 대전 동구 예비후보가 지난 6일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목에 걸고 대전역 앞 사거리의 도로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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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예비후보가 대전 동구 동산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장 예비후보가 대전 동구 동산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젊지만 잘 훈련된 30대 정치인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빚진 게 없으니 좀더 소신껏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젊은 정치’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대전 동구 장철민(38) 예비후보가 지난 6일 오후 자원봉사자들이 모인 대전의 한 식당에 나타나자 식사 중이던 박용석(62)씨는 “나이 든 사람들이 진 빚이 80%라면 젊은 사람들은 10%밖에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가 말을 끝내자마자 다른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도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청년 정치를 주제로 격론을 벌이는 진풍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국경혜(68·여)씨는 “고루한 사람들 말고 신선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국회에 가야 뭐라도 바뀐다”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이옥자(73·여)씨는 “젊은 사람 한 명이 간다고 바뀌는 게 있느냐. 나이보다는 정책을 봐야 한다”고 반론을 펼쳤다. 그러자 이씨를 마주 보던 최명열(63)씨가 “한 명이 들어가서 변화가 생긴다면 소신 있는 젊은 정치인들이 많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날 장 예비후보가 들른 곳은 경로당, 자원봉사모임, 구청 노래교실, 중앙시장 등 대부분 고령층이 주로 모인 장소였다. 그의 선거 준비를 돕는 정근모 사무장은 “원래 민주당 후보는 경로당에서 인사하기도 어려운데 장 예비후보는 젊어서 인기가 좋다”며 웃었다. 실제 이날 동산경로당에 모인 20여명의 노인들은 장 예비후보에게 “이쁘다”며 박수를 보냈다.

정치권 소식을 슬쩍 꺼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마침 이날은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사의를 표명해 대전 동구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작 장 예비후보는 침착한 반응이었다. 그는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예상했던 일이고, 경선을 해서 이기고 올라가면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장 예비후보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7급 비서로 시작해 7년 만에 2급 정책조정실장까지 올라간 정치 엘리트다. 그는 “어려운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문제를 잘 발견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찾는 것이 훈련된 정치인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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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지수(26) 중랑갑 예비후보가 7일 서울 지하철7호선 면목역에서 시민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정의당 김지수(26) 중랑갑 예비후보가 7일 서울 지하철7호선 면목역에서 시민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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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예비후보가 면목역 인근 동원시장에서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
김 예비후보가 면목역 인근 동원시장에서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
●새벽부터 ‘무표정한’ 유권자 만나러 분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지난 7일 오전 6시 30분, 서울 중랑갑에 출마할 예정인 정의당 김지수(26) 중랑갑 지역위원장은 지하철 7호선 면목역 입구에서 유권자들에게 명함을 건네기 바빴다. 정의당 특유의 노란색 점퍼를 입은 앳된 얼굴의 김 예비후보는 연신 시민들을 향해 “처음 뵙겠습니다. 김지수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등의 인사를 건넸다.

선거캠프 사정이 넉넉잖은 탓에 출근길 인사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김 예비후보와 김난희 사무장뿐이었다. 오전 8시를 넘어 본격적인 출근 시간대가 되자 둘이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너무 일찍 나와서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예비후보는 “정치인이 힘들어야죠. 대의를 위해서라면”이라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명함을 건넸을 때 받아 든 사람은 많아야 10명 중 1명이었다. 대부분은 무표정한 채로 지나가거나 “난 그 당 아닌데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버려진 명함을 보면 안타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받아주신 분 중 일부는 명함을 살펴보기도 한다”면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만 26세의 김 예비후보는 이번이 첫 출마다. 피선거권을 갓 부여받아 총선은 물론이고 지방선거 경험도 없다. 게다가 모아둔 것 없는 20대 나이로 출마하려니 금전적 부담도 만만찮다. 그는 “중앙당의 지원금과 후원금이 주된 재원이다. 옥탑방에 세 들어 살면서 번듯한 자산도 없어 재정적인 부담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젊은 나이지만 김 예비후보는 ‘준비된 후보’라고 스스로를 평한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다 자퇴한 그는 “예술가가 아니라 직접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의당 청년 정치인 양성 프로그램인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당 정책위원회 당직자, 청년 부대변인 등의 활동을 고루 거쳤다.

김 예비후보는 출마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제로 출마를 할 수 있는 여건 사이에 간극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출마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일찍부터 활동하며 정당정치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정당에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포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대전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서울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2020-01-0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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