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먹고살려고 여장한 남자들/손성진 논설고문

입력 : ㅣ 수정 : 2019-11-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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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 남자의 사연을 다룬 기사(동아일보 1956년 1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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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장 남자의 사연을 다룬 기사(동아일보 1956년 11월 10일자).

고 구봉서 주연의 ‘남자는 안 팔려’(1963년 작)는 서울에 올라온 두 청년이 일을 구하지 못하자 여장을 하고 다니다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실제로도 남자 일자리는 적고 여자 일자리는 많아 여자 행세를 하던 남자들이 드물지 않았다. 1950년 서울 충정로에서 접대부로 일하다 발각된 10대 후반의 조모군은 신문 배달 등으로는 병든 부모와 동생 다섯 명을 돌볼 수 없어 여장을 한 사례였다. 신문은 조군의 딱한 사정을 두 번에 걸쳐 화제 기사로 실었다(경향신문 1950년 2월 7, 8일자).

부산에서 식모로 일하다 상경해 댄스를 배워 화신백화점 댄스홀에서 댄서로 일하던 여장 남자나 5년간이나 다방 레지로 일하다 경찰에 자수해 취직을 시켜 달라고 한 10대 소년의 사연도 1950년대 말 전후 혼란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1966년 5월 이모(29)씨가 서울 마포 술집에서 여장을 하고 접대부 노릇을 하다 발각돼 경찰에 붙들려 갔지만 훈방됐다. 1971년 3월 어느 날 서울 청량리경찰서에 파마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사람이 통금 위반에 걸려 들어왔다. 알고 보니 남자로는 취직이 안 돼 식모살이를 하려고 상경하던 여장 남자였다(경향신문 1971년 3월 3일자). 장발 단속을 피하려고 하이힐을 신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활보하던 여장 남자들이 즉심에 회부되기도 했지만, 여장 남자를 처벌할 마땅한 법규가 없어 장발족으로 처벌하는 게 고작이었다. 1979년 6월 서울 종로경찰서가 ‘말자’와 ‘춘희’라는 이름으로 다방 레지로 일하던 20대 초반의 여장 남자 두 명을 적발했다. 이들도 단지 장발족으로 즉심에 넘겨졌다. 이듬해 6월 서울 시내에서 여장을 하고 술 취한 남자를 유혹, 고고클럽에서 춤을 추고 팁을 받아 용돈으로 써오다 적발된 20대 청년 두 명은 “여자 행세를 하니까 세상 살기가 참 쉽더라”고 말했다.

대개는 성적 정체성 혼란 때문에 여성 행세를 했다. 전북 김제에서는 4년 동안 여장을 하고 접대부로 술집을 전전하던 남성이 붙잡혀 사회면에 다뤄졌는데 그런 경우였다(동아일보 1956년 11월 10일자). 서울 장위동에서 1년 동안 식모살이를 하다 불심 검문에 걸려 탄로 난 여장 남자 김모(24)씨를 고용한 음식점 주인은 “틀림없는 여자인 줄 알았다”고 했고, 이웃 노파는 김씨를 수양딸로 삼았다고 한다.

7년 동안 극단의 쇼걸로 미군 무대에서 스트립쇼도 했고, 이후 7년은 접대부로 일한 남자 아닌 남자 이모(28)씨는 P악극단 출신으로 서라벌예대에 과외생으로 다니며 김백봉 여사에게 칼춤을 1년 동안 배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동아일보 1966년 5월 28일자).

2019-11-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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