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혈연이 가족의 기준 아냐” 36년 전 판례 유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23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과 대법관들이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19.10.23 연합뉴스
●인공수정 출산 후 동의 번복 안 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는 23일 60대 남성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전합 13명 가운데 9명은 “민법상 친생 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다”는 다수 의견을 냈다.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 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또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친생 추정과 달리 남편이 친생 부인 소를 제기해 친생자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부인이 혼외로 낳은 둘째도 남편 자녀 인정
A씨 부부는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1993년 타인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첫 아이를 낳았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하고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러나 2013년 부부 갈등으로 협의이혼 신청을 밟으면서 둘째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생자관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 검사 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답변하는 민유숙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권순일·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음이 증명되고,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거나 파탄된 경우엔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민유숙 대법관은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내고 “부부의 비동거뿐 아니라 외관상 명백한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친생 추정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며 파기환송을 주장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9-10-24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