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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였던 ‘나의 아버지 최재형’

독립운동가였던 ‘나의 아버지 최재형’

김성호 기자
입력 2019-09-17 17:22
업데이트 2019-09-1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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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 육필 원고 우리말로 옮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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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대부인 최재형(1860~1920)의 독립투쟁을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최재형의 딸 올가 페트로브나와 아들 발렌틴 페트로비치의 육필 원고를 러시아 전문가인 정헌 전 모스크바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나의 아버지 최재형’(표지·도서출판 상상).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냈으면서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의 면모가 상세하게 드러나 눈길을 끈다.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인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재형은 어릴 적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무역업으로 큰 부를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항일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하고 이끌었지만 국내에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민족평화재단 등이 추적해 마지막 거처인 우수리스크에 기념비를 세운 것도 지난달의 일이다.

올가와 발렌틴의 기억과 회상을 반반씩 묶은 책에서 전해지는 최재형의 실상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아버지가 점령자 일본과 싸웠다”고 거듭 밝힌 딸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거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우리 집에서 (안중근 의사가) 집 창고 벽에 세 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연습을 했다”고 기억하는가 하면 “결국 안 의사가 하얼빈으로 넘어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원고에 적었다. 최재형은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된 뒤 총살됐다. 올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방 덧문을 열었고, 5분 정도 뒤 총을 든 일본군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는 팔이 뒤로 묶여 잡혀 가는 모습이었다.”

발렌틴이 회상하는 최재형은 주로 계몽과 사회활동을 하며 한인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큰 의미를 뒀던 인물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민족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한인들이 연해주에서 대거 중앙아시아로 옮겨 간 뒤에 겪었던 정치적 핍박에 대해서도 증언한다. 발렌틴과 올가는 모두 중앙아시아 이주 뒤 체포돼 감옥살이를 했으며 출소 뒤 1995년, 2001년 각각 세상을 떴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그의 이름은 아직도 우리 가슴의 별빛 언덕 위에 쓰여 있다”며 “그의 딸과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 시리게 한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9-09-1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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