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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에 속아서” 경찰, 고유정 수사라인 3명 감찰 의뢰

“거짓말에 속아서” 경찰, 고유정 수사라인 3명 감찰 의뢰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19-08-07 14:04
업데이트 2019-08-0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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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수사·현장보존·졸피뎀 확보 등 부실수사 결론

“우선순위 아쉬운 점 있어 감찰 의뢰”
“수사의 방향성에는 큰 문제 없었다”
긴급체포 당시 고유정의 어이 없다는 표정
긴급체포 당시 고유정의 어이 없다는 표정 세계일보 영상 캡처
제주에 아들을 보러 온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제주 ‘고유정 사건’의 부실수사 논란과 관련해 경찰 수사 책임자들이 감찰 조사를 받게 됐다. 당시 고유정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은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했다’는 고유정의 거짓말에 속아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진상조사팀은 7일 실종 초동조치 및 수사 과정에서 일부 미흡한 점이 있다고 보고 박기남 전 제주동부경찰서장(현 제주지방경찰청 정보화장비담당관)을 비롯해 제주동부서 여청과장과 형사과장 등 수사책임자 3명에 대해 감찰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점검 결과, 실종 신고 접수 후 초동조치 과정에서 범행 장소인 펜션 현장 확인 및 주변 수색이 지연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압수수색 시 졸피뎀 관련 자료를 발견하지 못한 사실 등을 확인해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부실수사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2일 현장점검단을 제주로 보내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와 여성청소년과 등 관련 부서를 상대로 사실관계 확인작업을 벌이고 문제점을 분석해왔다.

고유정 사건과 관련해 실종수사 초동조치 미흡, 범행현장 보존 미흡, 압수수색 당시 졸피뎀 미확보 문제 등을 두고 부실수사 논란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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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체포 당시 고유정 모습
긴급체포 당시 고유정 모습 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이 사진은 경찰이 촬영한 영상의 캡처본. 2019.7.28 연합뉴스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실종 수사는 수색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범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서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는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서 “우선순위 판단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어서 감찰 조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중요한 단서였던 현장 CCTV는 경찰들이 놓치고 있던 것을 전 남편의 유족들이 직접 찾아 전달했다.

또 진상조사팀은 당시 수사팀이 ‘전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고유정의 거짓 진술에 속아 시간을 허비했다고 판단했다.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최종목격자(고유정)가 하는 거짓말에 휘둘렸다”면서 “사실 판단을 신중하게 해야 했고 더 일찍 거짓말이란 걸 알아채야 했다”고 아쉬움을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10일 방영된 MBC ‘실화탐사대’에서는 고유정에 대해 “일상이 거짓말”이라는 지인들의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전 남편 강모씨와의 이혼 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이 “(전 남편이) 집에 자주 안 들어왔다. 알코올 중독자”라며 이혼의 책임이 전 남편에게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강씨의 지인들은 “강씨는 술을 못 먹는다”면서 “고유정은 거짓말이 발각되면 판사 앞에서 울어버린다”며 무섭다고 표현했다.
전 남편 살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고유정
전 남편 살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고유정
범행 장소인 펜션을 조금 더 일찍 확인하지 못한 점과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점도 감찰 조사 의뢰 대상으로 삼았다.

진상조사팀은 수사팀이 고유정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할 당시 졸피뎀 관련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한 경위도 조사했다.

진상조사팀은 “압수수색 당시 졸피뎀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압수수색 과정에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과 수사 지휘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부분도 감찰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고유정 체포 영상이 언론에 유출된 경위도 감찰 조사 대상이다.

해당 영상은 박 전 서장이 동부서장 재직 시절 한 차례, 제주청으로 자리를 옮긴 뒤 두 차례 등 총 3번 유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피의자 검거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적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외부에 공개된 사실도 확인했다”면서 “감찰 단계에서 공보 규칙과 인권 규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자 고유정(가운데).
피의자 고유정(가운데).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조금씩 시간이 지체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어 지휘 책임을 물어 감찰을 의뢰했다”면서 “다만 수사의 방향성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사팀 관계자들은 현장 상황의 어려움을 진상조사팀에 호소했으며, 박 전 서장은 자신의 불찰이라며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진상조사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제도개선에도 나설 방침이다.

경찰청은 고유정 사건처럼 중요사건이 발생할 경우 초기 위기관리를 위해 종합대응팀을 운영하고 실종 사건 발생 시 신속하고 면밀한 소재 확인을 위해 실종 수사 매뉴얼도 개선하기로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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