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졸업 9년… 월급도 노동환경도 나아지지 않았다

입력 : ㅣ 수정 : 2019-06-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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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슈 노동자 입니다] 2부<상> 특성화고 전성시대? 졸업생 취업 현실은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목표로 하는 직업계고는 한때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이명박(MB) 정부 때인 2010~2012년 상업고·공업고에서 마이스터고·특성화고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단 뒤 정부의 고졸 채용 정책 바람을 타고 취업률이 급상승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장밋빛 미래’를 믿고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노동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은 9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신문은 20대 중반이 된 당시 졸업생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개 비슷한 현실을 전했다. “졸업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월급은 오르지 않았고 열악한 노동 환경도 그대로”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고 김태규씨. 김태규씨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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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고 김태규씨.
김태규씨 가족 제공

2014년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태규(당시 25세)씨는 지난 4월 10일 일터에서 사고로 숨졌다. 경기 수원 한 건설 현장에서 문이 열려 있던 화물 엘리베이터 밖으로 떨어졌다. 동생의 삶에 대해 누나 도현(29)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공고에 진학한 게 집안 형편 때문은 아니에요. 운동을 하던 태규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 했고, 자기 밥벌이를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도현씨는 특성화고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태규씨는 특성화고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이후에는 하청업체 생산라인에서 주로 일했다. 고졸 졸업장밖에 없는 태규씨가 성실함만으로 버텨 내기엔 세상은 악랄했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됐기 때문에 1년이 지나면 또 다른 업체를 알아봐야 했다. 업체에서 업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남는 시간에는 건설현장 일용직을 했다.

●졸업 8년 만에 건설 현장에서 숨진 태규씨

도현씨는 “태규가 졸업 이후부터 죽은 그날까지 자기 앞가림을 하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몸으로 뛰어 돈을 벌어 보겠다는 25살 청년에게 안전화나 안전벨트와 같은 보호장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지 8년 만에 김씨는 공사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노동자들은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서 무한대의 노동시간을 감당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당해 낸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졸업생 권지윤(26·가명)씨는 “처음 작은 업체에서 최저임금 정도의 돈을 받으면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 상태가 유지된다”며 “원한다면 그 직장에서 일할 수 있지만, 월급이 오른다거나 경제사정이 나아질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직업계고 졸업생들은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고등학교라는 이름의 용역업체”라고 불렀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현장실습 및 취업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특성화고 졸업생 중 취업자의 평균 급여는 2018년 기준 연봉 1535만원이다. 2016년 1786만원, 2017년 1861만원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2018년 공공기관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530만원이다. 지난해 10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입사 1년차 대졸 신입사원 9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기업 신입사원은 3748만원, 중견기업은 3160만원, 중소기업은 2636만원을 받았다. 1000만~2000만원에 이르는 간극 탓에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스스로를 “현장에서 값싸게 쓰고 버려지는 인력”이라고 자조한다.

김정혜(24·여·가명)씨가 19살의 나이에 입사했던 곳은 작은 업체였다. 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입사 초 온갖 부당함을 겪었다. 사측은 앳된 정혜씨에게 “20살이 안 돼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정혜씨는 2014년 입사하면서 월급 100만원 정도를 받았다. 다음해인 2015년 최저임금은 전년도에 비해 시간당 370원이 오른 5580원이 됐지만, 월급은 그대로였다. 입사 2년차부터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면서 야근은 밥 먹듯 했다. 당연히 초과근무수당과 상여금은 받지 못했다. 정혜씨는 “이제 막 졸업한 어린애라 법을 잘 모를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버려질 수 없었다. 열악한 노동조건 앞에 버티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몸에 무리가 올 정도로 일하고도 “쉬게 해 달라”고 회사에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5년, 정혜씨는 졸업 직후 발을 내디뎠던 디자인 분야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 정혜씨는 “월급도 꽤 많이 올라서 지금은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는다”며 희망적으로 말했다. 올랐다는 월급은 약 2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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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취업생 고용보험 가입 2016년 59%

1~9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에 다니는 박유진(24·가명)씨는 운이 좋은 경우다. 특성화고 3학년이던 2013년 지하철 용역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채용된 뒤 이 업체가 교통공사에 흡수되면서 공기업 직원이 됐다. 그는 스스로 “인생이 진짜 잘 풀렸다”고 했다. 특성화고 졸업생 중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일하면 가장 성공적인 취업 케이스로 꼽힌다.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데다 안정적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유진씨는 2011년 특성화고에 입학했다. ‘졸업만 하면 취업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유진씨는 ‘밥은 굶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취업이 보장된 학교로 진학해 또래보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성화고에 다니던 유진씨와 친구들이 당시 근무조건 중 유일하게 따졌던 건 월급이었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나마 학생 신분으로 현장실습할 땐 표준협약서 등 작은 보호장치라도 있었지만, 졸업한 뒤에는 12시간 근무하고도 최저임금 정도밖에 못 받았다. 유진씨의 친구들은 대부분 졸업 이후 1~2년 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2010년대 초반 이른바 ‘특성화고 전성시대’에 학교를 다닌 20대 중반의 노동자들은 “특성화고 취업률 고공행진”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그러나 당시 교육 당국이 발표한 ‘높은 취업률’에는 취업 유지 비율, 고용형태, 임금수준, 일자리 만족도와 같은 질적 부분이 빠져 있다. 특성화고 도입 10년이 넘었지만, 단 한 번도 질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 특성화고를 졸업해 노동시장에 정착한 학생들이 지금은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나 연구도 드물다. 졸업한 그해 딱 한 번 이뤄지는 조사로 높은 취업률이라는 허상이 만들어진다.

특성화고 졸업생 중 고용보험에 가입된 일자리에 취업한 비율은 2012년 전체의 79.6%에서 2016년 58.8%로 줄었다. 또 2014년 이후 특성화고 학생이 대거 졸업하면서 양적으로는 취업이 늘었지만, 제조업 취업은 줄어들고 음식숙박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도 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음식숙박업 취업 비중 증가는 고용의 질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면서 “취업 목적의 교육을 이수한 이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더욱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특성화고 여전히 자격증 시험 준비만

직업계고에서 배우는 교육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설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경기지부 사무국장은 “산업 수요의 변화에 따라 교육 시스템이 변해야 직업 교육이 의미 있는데, 일부 특성화고에서는 교사들이 여전히 자격증 시험 준비만 시키는 등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위원장은 “고졸 노동자 중 정규직 채용비율은 10명 중 1명꼴로, 나머지는 최저임금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로 내몰린다”며 “질 낮은 일자리에 투입되는 인력을 특성화고가 대량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2019-06-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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