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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서 아시아 첫 ‘법적 동성부부’ 탄생…“서로 도와 잘 살게요”

대만서 아시아 첫 ‘법적 동성부부’ 탄생…“서로 도와 잘 살게요”

김태이 기자
입력 2019-05-24 16:30
업데이트 2019-05-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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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전역 결혼등기소에 동성커플 발길 이어져



24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시 신의(信義)구청 행정센터.

오전 8시 30분(현지시간)에 정식 업무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손을 맞잡은 남-남, 여-여 예비부부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구청에 속속 도착했다.

이들 중에는 30대 남성 짝인 린쉐인 씨와 위안샤오밍 씨도 있었다.

업무가 시작돼 민원센터 창구가 열리자마자 이들은 서둘러 창구로 가 결혼등기를 했다. 아시아 최초로 대만에서 법적으로 인정받는 동성 부부가 탄생한 것이다.

신의구청에서 가장 먼저 결혼등기를 마친 린씨와 위안씨의 신분증 뒷면에는 이성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동성 배우자의 이름이 새로 새겨졌다.

린씨는 결혼등기를 마치고 감격에 북받친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늘 (결혼등기를 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었고, 오는 차 안에서 울었다”며 “(결혼등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고, 이는 국가의 진보”라고 말했다.

이날 대만 전역의 관공서에는 결혼 동기를 하려는 동성 커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타이베이 네이후(內湖)구 호정사무소에서는 20년간 사귀어온 남성 커플인 쉬(許·48)모 씨와 선(沈·40)모 씨가 결혼등기를 했다.

쉬씨는 “우리는 20년을 함께 해 오면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며 “특히 작년 배우자가 아파서 수술을 하게 됐는데 나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없어 매우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법률적 권리가 생겨서 너무 기쁘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우린 평소대로 부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서로 도우며 잘 살겠다”며 “우리는 20년 동안 만나왔기 때문에 사실 가족과 다름없다. 우리 어머니도 다 알고 계신다. 이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감격해 했다.

앞서 결혼 등기를 하겠다고 사전 예약한 동성 커플은 254쌍. 이날 하루만 최소 수십∼수백 쌍의 동성 커플이 실제로 등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국회는 지난 17일 아시아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22일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법제화 절차가 완료됐다.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법제화한 국가가 되리라는 것은 이미 지난 2017년 예고됐다.

대만 최고법원은 2017년 5월 동성 결혼을 금지한 민법의 혼인 조항이 위헌이며, 2년 내 관련 법의 수정 또는 제정이 없으면 자동으로 동성 결혼 동기가 가능해진다고 결정했다.

이후 대만에서는 혼인 주체를 남녀로만 규정한 민법 규정 자체를 손볼 것인지, 민법 조항은 그대로 두되 특별법을 제정해 동성 결혼을 보장하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 11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이뤄진 국민투표에서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 제한해야 한다는 항목이 통과되면서 특별법 제정으로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는 길을 택하게 됐다.

동성 결혼 법제화를 위한 특별법인 ‘사법원 해석 748호 해석 실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향후 대만의 동성 커플들은 이날부터 관청에 결혼등기를 할 수 있으며, 이성 부부와 같이 자녀 양육권, 세금, 보험 등과 관련한 권리도 갖게 될 전망이다.

특별법 입법 과정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동성이 함께 반려자로 살아갈 권리는 인정하되 ‘결혼’ 대신 ‘동거’ 등 용어를 쓰는 보수적인 내용의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지만 국회 내 표결 끝에 동성 간 결합도 이성 간 결합과 마찬가지로 ‘결혼’으로 봐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정부안이 통과됐다.

동성 결혼 법제화 실현에 대만의 성 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대만 동성 결혼 법제화는 꾸준히 펼쳐진 성 소수자 권익 향상 활동과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동성 커플 30쌍은 지난 2014년 대만의 타이베이의 중정(中正)호적사무소에 찾아가 단체로 결혼 동기를 신청했다가 반려됐다. 이는 사회적·제도적으로 결혼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대만에서도 일부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동성 결혼 법제화가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를 위협한다면서 우려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작년 11월 국민투표에서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항목이 통과됐는데 이는 대만의 일반 여론이 성 소수자들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동성 결혼 반대 단체를 이끄는 쑨지정(孫繼正)씨는 대만 중앙통신사에 “동성 결혼 특별법 통과는 가정교육에 핵심적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대만 정부는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발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제도를 안착시키는 과제를 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이 총통은 22일 특별법에 서명하면서 “이 법이 정말로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더욱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할 수 있게 되고, 서로를 돌보고,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고, 법률상의 기본적 권익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라며 “사랑의 깃발 아래 다시 뭉치자”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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