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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여명 노란 그리움…“사람 사는 세상 우리가 만들게요”

2만여명 노란 그리움…“사람 사는 세상 우리가 만들게요”

손지은 기자
손지은, 강원식, 이근아 기자
입력 2019-05-23 20:56
업데이트 2019-05-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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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 없었던 봉하마을 盧 추도식

노건호 “아버지, 국민 믿었다” 유족 인사
초대 비서실장 문희상 “사무치는 그리움”
盧 생전 육성에 권양숙 여사 울음 터트려
추모객들, 너럭바위 묘역에 국화꽃 바쳐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에도 시민들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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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장 향해 줄선 시민들
추도식장 향해 줄선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23일 시민들이 특설무대로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해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새로운 노무현’의 시대를 함께 맞으려는 2만여명의 추모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유족,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봉하마을을 찾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손학규 바른미래당·정동영 민주평화당·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야당 지도부도 자리를 빛냈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불참한 한국당은 조경태 최고위원 등이 대표단으로 참석했는데 일부 추모객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추모객 몰려 교통 통제… 2㎞ 걸어서 이동

1년에 단 하루 매년 노 전 대통령의 기일이 되면 마을 전체가 마비되는 봉하마을은 이날도 이른 아침부터 진입도로가 연결되는 국도 양방향 모두 교통정체가 이어졌다. 마을 안 주차 공간이 모자라 인근 농로까지 차량으로 빼곡히 들어찼다. 일반 방문객들은 마을에서 떨어진 주변 공단 빈터 등에 차를 세워놓고 대부분 걸어서 이동했다.

대형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추도식장을 향하던 민주당 의원 수십명도 결국 봉하마을을 2㎞ 앞두고 버스에서 내렸다. 이인영 원내대표, 설훈·김해영·박광온 최고위원 등 70여명이 추도식에 늦지 않고자 종종걸음으로 시민들과 함께 걸었다.

행사장에 마련된 3000여석의 좌석은 추도식 시작 2시간 전에 이미 꽉 찼다.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을 놓치고 싶지 않은 추모객들은 옆 동산에 올라 추도식을 지켜봤다. 또 행사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영면한 너럭바위 묘역에 하얀 국화꽃을 바치거나 노란색 바람개비를 들고 묵념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노무현재단이 마련한 후원 부스에도 줄을 길게 섰다.

노무현재단이 추모객에 나눠준 노란색 모자에는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순간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에서 손녀 서은양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모습이다.

2015년 6주기 추도식 때 민머리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 면전에서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반성도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던 아들 건호씨는 이날은 밝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았다. 건호씨는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아버님은 우리 국민이 이루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셨다”고 유족 대표 인사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 의장은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이 계시지 않은 봉하의 봄은 서글픈 봄입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의 5월입니다”고 회고했다. 이 총리는 “대통령님은 저희에게 희망과 고통, 소중한 각성을 남기셨다”며 “사람들의 각성은 촛불혁명의 동력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고 추도사를 했다.

가수 정태춘이 추모곡으로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떠나가는 배’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육성 연설과 어우러지자 권 여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눈물을 참으려 입을 다물었으나 입술이 떨렸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부른 ‘상록수’가 두 번째 추모공연으로 무대에 올랐고, 수천마리의 노란 나비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다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추도식을 마무리했다. 김 여사와 권 여사, 건호씨 등이 가장 먼저 헌화하고 뒤를 이어 주요 참석자가 묘역을 참배했다.

유시민 이사장에 앞서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해찬 대표는 묘역 참배가 끝난 후 “많은 분이 조문을 오셨다. 올해를 새로운 노무현을 시작하는 해로 선포했다”며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이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학규 대표는 참배 후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의 억압에 몸을 던지신 것인데, 권력이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쓰이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모친상으로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한 유 이사장은 일산병원 빈소에서 “10주기를 맞아 슬픔이나 안타까움으로 노 전 대통령을 회고하기보다는 용기나 확신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입장에서 행사를 준비했다”며 “그런 취지가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하니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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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 준비하는 추모객들
분향 준비하는 추모객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묘역 앞에 추도객들이 도열해 분향을 준비하고 있다. 김해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박지원 “서명운동 도중 서거 아직까지 애석”

이날 건강상의 이유로 추도식에 불참한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 당시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박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갖은 모욕을 당할 때 (서거할 것을) 감지해 동교동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래서 서명을 받아서 검찰에 제출하도록 했는데 서명운동 중에 서거해 참으로 애석한 마음을 지금까지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노무현 못 지켰다는 미안함 여전합니다”

봉하마을에서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에서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중구 대한문 앞에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차린 분향소가 마련됐다. 분향소를 찾은 김동현(17)군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분향소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분향소 옆에서 상영된 노 전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보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김소영(46·여)씨는 “먹고살기 바빠 노 전 대통령을 못 지켜 드렸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꼭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분향소 한쪽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는 편지를 쓰는 코너도 마련됐다. 노란 종이에는 ‘늘 그립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꼭 만들겠습니다’, ‘새로운 노무현,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등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적혔다. 주최 측은 “편지를 모아 봉하마을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서울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2019-05-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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