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벗어던진 6만명…벗지 못한 혐오의 색안경

입력 : ㅣ 수정 : 2019-05-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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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 의미·과제
2000년 성소수자 50명 첫 퍼레이드
“축제엔 존재 자체 축하하는 의미 담겨”
가족 참가… 공동체 일원 수용 넓어져
5년 전 동성애 반대 집단서 행진 반대
행사 커질수록 혐오와의 전쟁도 커져
2006년 6월 10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열린 제7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퀴어퍼레이드에서 한 참가자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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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6월 10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열린 제7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퀴어퍼레이드에서 한 참가자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2013년 6월 1일 홍대 일대에서 열린 제14회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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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1일 홍대 일대에서 열린 제14회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가을비가 내리는 대학로에 우산을 받쳐 든 시민 50여명이 행진하고 있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과 얼굴을 드러낸 사람들은 손에 무지개색 현수막을 나눠 들었다. 현수막에는 ‘무지개 2000’이라는 낯선 이름 아래 ‘한국성적소수자(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2000년 9월 9일 한국에서 처음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 모습이다.
지난 2월 26일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제20회 축제 개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한채윤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 강명진 조직위원장, 안성민 문화연대 사무처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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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6일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제20회 축제 개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한채윤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 강명진 조직위원장, 안성민 문화연대 사무처장. 연합뉴스

조촐하게 문을 연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올해 스무살이 됐다. 올해 축제는 서울광장에서 21일부터 6월 9일까지 열린다. 50명으로 시작한 작은 축제는 지난해 6만명(경찰 추산 1만 5000명)이 참여하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또 존재감도 커졌다. 축제가 열릴 때마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돼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쟁들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축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한국 사회에 남긴 의미와 과제를 짚었다.

●“존재 긍정하기… 축제의 가장 큰 목적”

20년째 축제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한채윤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은 “매년 축제를 기획할 시점이 되면 ‘과연 축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말한다. 한 줌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시작해 자금이 부족했고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과도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20년 전 동성애는 지금보다 더한 금기어였다.

두려움을 넘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서였다. 존재를 긍정해야 사회 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 단장은 “축제와 퍼레이드에는 소수자로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축하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벽장에 숨어 있던 성소수자들이 길 위로 쏟아져 나와 “우리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같이 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자”는 화두를 던진다는 것이다. 2000년 거리로 나오기까지 1990년대 대학 내 모임들과 인권 단체에서 싹튼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밑거름 역할을 했다.

첫 회 때는 축제를 제대로 다룬 언론보도가 한 줄도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축제를 열다 보니 50명이던 참가 인원이 300명, 2000명으로 매년 늘어났다. 20년간 개인 후원도 꾸준히 증가했다. 참가자수와 주체들이 다양해지며 퍼레이드 규모도 커졌다. 2002년 1t 트럭 1대에서 시작해 올해는 2.5t 트럭 11대가 거리를 메울 예정이다. 코스도 확대돼 서울광장에서 시작한 퍼레이드는 처음으로 광화문광장을 거친다. 두 광장이 시민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규모만큼 참가자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조직위 구성도 인권단체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축제 기획자 개개인이 모이는 경우가 많다. 첫 회 10명으로 시작한 기획단은 현재 48명까지 늘었다. 축제 초반 행사 명칭에 자주 쓰였던 동성애자라는 단어도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양성애자 등 더 많은 소수자를 포용하기 위해서다. 2010년부터 조직위를 맡은 강명진 위원장은 “초창기에는 동성애자라는 단어가 그나마 익숙했지만 대표성이 약한 측면이 있다”며 “축제 내부도 더 많은 소수자를 포용하기 위해 변해 왔다”고 말했다.

축제의 외연도 넓어졌다. 장애인, 여성, 노동자 등 다양한 약자들이 축제의 틀 안으로 들어왔고,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나 아이를 데려온 부모, 이성애 커플 등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이 축제에서 더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후 무지갯빛 행렬은 2009년 대구를 비롯해 2017년 부산과 제주, 2018년 전주, 광주, 인천 등 서울 밖으로 확산됐다.

●성소수자 혐오 넘을 방법 고민해야

축제의 역사와 함께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달라져 갔다. 한 단장은 “동성애라고 하면 20년 전에는 아예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변태라고 욕했지만, 지금은 최소한 성소수자가 주변에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며 “가족단위 참가자들을 보면 성소수자를 공동체 일원으로 수용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마음을 여는 것은 성소수자들이 실질적인 시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현재 유통되는 문화 콘텐츠들은 마치 일상 공간이 모두 이성애자로 메워졌다는 듯 이성애 서사로 가득 차 있다”면서 “이 관습을 깨고 성소수자를 드러내는 것은 정치적 시민권과 생존권을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다. 성소수자들이 거리로 나설수록 ‘동성애 혐오’도 짙어졌다. 일부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 반대 집단은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퍼레이드에서 처음 현장에 등장했다. 길 위에 누워 행렬을 막고 차량을 향해 물건을 던졌다. 이후 참가자 보호를 위해 주최 측은 퍼레이드 차량을 더 크고 높은 것으로 바꿨다. 2015년 처음 서울광장에 장소를 잡은 것도 혐오 세력에 떠밀린 측면이 컸다. 강 위원장은 “언젠가 서울광장에서 해야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학로에서 하려다 동성애 반대 단체가 먼저 집회신고를 하는 바람에 서울광장에서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회 축제를 앞두고도 서울시 공무원 10여명이 서울광장 사용을 허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혐오의 목소리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2014년 6월 7일 신촌 연세로 일대에서 열린 제15회 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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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6월 7일 신촌 연세로 일대에서 열린 제15회 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2001년 9월 15일 홍대 앞에서 열린 제2회 축제 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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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 15일 홍대 앞에서 열린 제2회 축제 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2010년 6월 12일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 제11회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 2010년 6월 12일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 제11회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혐오와의 전쟁은 스무살 축제 앞에 놓인 과제다. 한 단장은 “혐오에 대한 생각을 묻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혐오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소수자를 괴롭히는 분명한 폭력인데도 우리 사회는 혐오를 하나의 의견인 것처럼 인정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던져 온 ‘동성애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현재 상황은 문화 운동의 성과에 비해 제도 변화는 미흡한 교착상태”라며 “차별금지법 제정 등 국회가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의 퀴어 담론은 여전히 지식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면서 “축제가 일상 속의 인권 문화에 완전히 녹아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9-05-2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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