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과자 제국’ 상속자의 생각없는 발언 왜 문제인가

입력 : ㅣ 수정 : 2019-05-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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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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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 라이프니치 비스킷은 과자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꽤나 알려진 독일 과자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엄청 비싸게 팔려나갈 정도다. 이 과자 등을 만들어 ‘제국’을 일군 발센 가문의 상속자인 베레나 발센(25)이 최근 잇따라 입길에 올랐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지난주 한 마케팅 컨퍼런스의 연사로 나서 “난 자본주의자다. 발센 가문의 지분 4분의 1을 갖고 있다. 대단한 일이다. 요트나 그딴 것들을 사고 싶다”고 정말 생각 없이 떠벌였다. 현지 일간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청중들은 손뼉을 마주 치며 웃어댔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나이도 한참 어린 상속녀가 과거 강제 노동을 통해 부를 쌓은 가문의 전력에 아랑곳 않고 돈자랑을 하는 모습에 아연 실색했다.

일간 빌트 기자가 이런 비판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베레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우리는 독일 노동자와 똑같이 강제 노무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했고 우리는 그들을 잘 대해줬다”며 자신의 회사는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항변했다. 불 난 데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회사도 베레나와 거리를 두려 했다. 그녀의 발언이 회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기업들이 잇따라 나치에 부역하거나 협력한 사실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흐름과도 완전히 배치됐다. 발센 가문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에서 끌려온 200명 정도의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베를린에 있는 나치 강제노동 기록센터는 트위터에 “발센 가문의 구성원들과 인식의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며 “나치 시절 강제노동 이슈는 여전히 집단 기억에서 지워진 대목”이라고 개탄했다. 홀로코스트에 가족이 희생된 역사학자 귀 스턴(97)은 기자들에게 베레나의 강제 노동 관련 언급이 “저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라르스 클링베일 사회민주당 사무총장은 “그런 대단한 부를 물려받는 이라면 책임감도 물려받아야 하며 그렇게 방자하게 행동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이며 유명 저자인 펠릭스 보르는 잡지 슈피겔 인터뷰를 통해 베레나가 “회사의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역사적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레나도 결국 고개를 숙였다.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생각없는 언급으로 논란에 불을 붙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이어 “민족 사회주의(나치)나 그 폐단을 평가절하하려는 다른 의도는 없었다”며 스스로 회사의 역사를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한편 “다음 세대로서 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내가 상처 입힌 모든 이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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