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분단 탓에… ‘봉오동대첩’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난항

입력 : ㅣ 수정 : 2019-04-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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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출신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레닌 지원금으로 연해주 협동농장 운영
러 공산당 가입… 지역·이념 연고권 北에
카자흐, 북한에 우호적 관계도 한 원인
한·카자흐 정부 “봉환 논의 계속” 합의
홍범도 장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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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장군
연합뉴스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던 애국지사 계봉우(1880∼1956)·황운정(1899~1989) 지사의 유해가 22일 고국 땅을 밟았지만 기대를 모았던 ‘봉오동 신화’의 주인공 홍범도(1868~1943) 장군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2013)의 저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 첫째가 홍범도, 둘째가 김원봉, 셋째가 김구”라고 언급할 만큼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남북 분단의 특수성 때문에 국내 봉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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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의 핵심 과제로 추진했다. 일제에 대한 무장투쟁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가 내년에 100돌이 되고 올해 7월 그의 활약을 담은 영화 ‘전투’도 개봉된다. 홍 장군이 한국에 돌아오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화룡점정’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자흐스탄 정부와 “논의를 계속한다”고 합의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학계에서는 유해 송환이 불발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우선 홍범도는 평안도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운동에 매진한 독립운동가다. 1921년 소련을 세운 레닌(1870~1924)에게 하사금을 받아 연해주에서 협동농장을 운영했고 1927년 러시아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그에 대한 지역적·이념적 ‘연고권’이 북한에 있다는 얘기다. 앞서 김영삼 정부도 1995년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려고 했지만 당시 북한이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도 홍범도를 ‘비호(飛虎) 장군’으로 부르며 높게 평가하지만 자신들의 건국 과정을 ‘기승전 김일성’으로 설명하다 보니 굳이 홍범도와 같은 경쟁자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의 독립운동 성과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해를 봉환할 생각도 없는 게 북한의 속내다.

카자흐스탄이 북한에 우호적인 점도 유해 봉환에 걸림돌이다. 카자흐스탄은 1850년 러시아 영토에 편입됐고 1936년 소련에 합병됐다. 북한과는 오랜 기간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했다. 카자흐스탄 정부 입장에서는 전통적 우방인 북한의 의중을 거스르면서까지 홍 장군의 유해를 한국에 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 송환 결정 역시 사전에 북한과 의견을 교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간 대한민국이 러시아와 중국에서 활동한 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점도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홍범도는 최재형(1860~1920), 이동휘(1873~1935)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로 간주돼 정부나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남북이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유해 공동 발굴을 논의하는 것처럼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의 유해 봉환이 고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9-04-2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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