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상곤 부총리, 교육 현장을 실험실 취급 말라

[사설] 김상곤 부총리, 교육 현장을 실험실 취급 말라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8-01-16 20:46
수정 2018-01-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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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결국 없던 일로 돌렸다. 당장 3월 신학기부터 적용할 방침이었으나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내년 초 확정안을 다시 발표하기로 했다.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견디지 못한 백기 투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말 느닷없이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밝혔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올해부터 초등 1, 2학년 영어수업이 금지됐으니 일관성 있게 진학 전 유아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꺾겠다는 것이 물론 핵심 취지였다. 이 방침이 나오기 무섭게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학부모들은 “3만원짜리 방과후 영어를 막겠다면 수십만원짜리 사설 학원으로 보내란 말이냐”고 반발했다. 젊은 엄마들은 “영어는 안 된다면서 방과후 중국어는 왜 되느냐”며 앞뒤 안 맞는 정책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싫건 좋건 영어가 이미 우리 사회 모든 시험의 지표가 된 마당이다. 사교육은 손을 못 대면서 이제 와서 학교 영어수업만 막겠다는 발상은 현실 감각이 한참 떨어졌다.

이번 사태는 교육부가 망신 한 번 당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 초기에 교육정책의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추락하고 있다. 대체 교육부가 현장을 무시하고 누구의 얘기를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지탄이 쏟아진다. 교육부는 공론화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어린이집 보육 정책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와도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정책이 잔기침만 해도 교육 현장이 요동을 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렇건만 반대 여론이 빤히 예상되는 정책을 엿장수 가위질하듯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교육부에 묻는다. 교육 현장이 여론을 간 보는 실험실인가. 학생과 학부모는 실험쥐가 돼도 되나. 국실장 회의 몇 번 하고 설익은 정책을 들이밀면 애꿎은 교육 현장은 그때마다 십년감수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7개월인데, 제 손으로 엎은 ‘아니면 말고’ 정책이 줄줄이다. 수능 절대평가, 자사고·외고 폐지 등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들 정책을 급히 밀어붙이다 비판 여론에 꽁무니를 뺐다. 강행하려다 반대 여론이 거세 청와대와 여당이 난감해하면 “일단 유예”로 소나기를 피하는 해법까지 매번 판박이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의견 수렴으로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 교육부가 이 모양인데, 교육부와 교감하며 중대 정책을 주무를 국가교육회의가 과연 제 역할을 해줄지 이만저만 걱정스럽지 않다.
2018-01-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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