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 이발소의 역습… 수컷 본능을 깨우다

[포토 다큐] 이발소의 역습… 수컷 본능을 깨우다

손형준 기자
입력 2017-03-26 17:10
수정 2017-03-2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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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숍;barbershop

‘구닥다리’ 이미지 탈피… 패션 소품·남성 잡지·오락기 갖춘 ‘멋남’들의 공간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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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이발소와 달리 세련된 분위기에 당구대, 오락기 등 남성 취향의 즐길거리까지 갖춘 바버숍, 서울 엉클부스 영등포점에서 진민준 대표원장이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기존의 이발소와 달리 세련된 분위기에 당구대, 오락기 등 남성 취향의 즐길거리까지 갖춘 바버숍, 서울 엉클부스 영등포점에서 진민준 대표원장이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가득한 미용실처럼 과거 이발소는 남자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지금은 남녀 모두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 미용실을 주로 찾지만, 예전에는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을 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멋을 내기 시작한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이발소에 위기가 찾아왔다. 미용실에 비해 세련되지 못한 커트 스타일과 낙후된 인테리어, 여기에 퇴폐업소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많은 남성들이 이발소로 향하던 발길을 끊고 여성들의 공간이었던 미용실을 찾기 시작했다.

미용실에 밀려 쇠락 업종으로 전락했던 이발소가 미국과 영국식 이발소를 한국화한 바버숍으로 체질개선을 하며 다시 살아나고 있다. ‘살롱에 뺏긴 남자들을 찾아오자!’라는 목표 아래 남성 취향의 공간과 서비스 등을 앞세운 역습으로 미용실로 향하던 멋쟁이 남성들의 발길을 바버숍으로 돌려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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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는 외모의 진민준 엉클부스 대표원장이 양손에 빗과 가위를 들고 고객의 머리를 세심하게 다듬고 있다. 바버들은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객에게 가장 많이 보이는 손과 팔에 타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개성 넘치는 외모의 진민준 엉클부스 대표원장이 양손에 빗과 가위를 들고 고객의 머리를 세심하게 다듬고 있다. 바버들은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객에게 가장 많이 보이는 손과 팔에 타투를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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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23·바리스타)씨가 엉클부스 홍대점에서 커트를 마친 후 포마드를 발라 단정해진 모습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랑(23·바리스타)씨가 엉클부스 홍대점에서 커트를 마친 후 포마드를 발라 단정해진 모습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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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부스 홍대점 내 잡지꽂이에 남성지들이 놓여 있다.
엉클부스 홍대점 내 잡지꽂이에 남성지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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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숍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서울 영등포 서울이용학원에서 마네킹으로 실습을 하며 이용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바버숍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서울 영등포 서울이용학원에서 마네킹으로 실습을 하며 이용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4~5년 전 한남동과 홍대 등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중심으로 문을 열기 시작한 바버숍은 최근 최고급 호텔과 유명 가전 마트에도 입점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남성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손재주 좋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남자 바버(이발사의 영어식 표현)들이 멋쟁이 남성들을 사로잡고 있다. 당구대와 오락기 등 남자들이 좋아하는 놀잇감부터 넥타이와 구두 등 패션 소품 판매 공간까지 각각의 바버숍마다 차별화된 인테리어로 남자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남자들은 손이 안 가는 여성지만 가득한 미용실과 다르게 살내음 풍기는 유명 남성지를 비치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 수컷 취향을 놓치지 않는다. 유행 스타일의 커트를 앞세운 미용실과 달리 바버숍은 반고체 향유인 포마드 왁스를 발라 단정하게 빗어 넘긴 클래식 스타일을 앞세워 정갈하고 신사다운 느낌을 원하는 남성들을 공략하고 있다. 남성적이고 색다른 스타일을 원하는 젊은 남성부터 여자들과 한 공간에서 머리를 자르는 일이 어색하고 불편한 중년 남성들까지 찾는 이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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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옛 이발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의 한 이발소에서 노년의 이발사가 노신사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70여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옛 이발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의 한 이발소에서 노년의 이발사가 노신사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서울 영등포의 한 바버숍에서 만난 임기영(31·자영업)씨는 “평소 슈트 등 클래식한 스타일의 옷을 자주 입는데 이와 잘 어울리는 포마드 스타일로 머리를 자르려고 1년 전부터 바버숍을 이용하고 있다. 남자머리를 전문으로 하는 만큼 미용실보다 깔끔한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며 바버숍을 찾는 이유를 밝혔다.

치솟는 인기 덕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4만~8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서비스 요금은 바버숍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처음 도입 당시 남성들의 고급문화 공간을 표방하며 임대료가 비싼 유명상권에 자리잡은 탓에 가격대가 높게 형성됐다고 한다. 영등포와 홍대에 매장을 둔 엉클부스를 중심으로 2만원 후반대의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바버숍들이 느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진민준 엉클부스 대표원장은 “고객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가격을 더 낮춰 유명상권을 벗어나 동네 골목까지 바버숍을 퍼트리는 게 목표다. 고급문화라는 틀을 깨고 예전 이발소처럼 남성들의 사랑방 같은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바버숍이 뜨면서 이용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이용기술학원을 찾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이발소로 대표되는 이용산업이 쇠락한 후 한동안 이용학원 수강생의 대부분은 염색방 개업을 하려는 여성들이었다. 바버숍 열풍 덕에 최근에는 바버숍 창업을 준비 중인 남성들이 수강생의 다수를 차지할 만큼 부쩍 늘어났다. 이들 중 포화상태인 미용업계에서 일하다가 블루오션 시장인 바버숍을 열기 위해서 이용기술을 배우는 현직 남성 미용사도 적지 않다. 패션과 미용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성을 칭하는 그루밍족의 증가세에 비춰 볼 때 바버숍의 인기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글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2017-03-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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