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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만에 사고사→과실치사…정의 승리로 귀결된 英축구장 참사

27년만에 사고사→과실치사…정의 승리로 귀결된 英축구장 참사

입력 2016-04-26 23:57
업데이트 2016-04-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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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6명 사망한 힐스보로 참사…총리 “뒤늦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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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힐스보로 참사 당시 사진. AP 연합뉴스
영국 힐스보로 참사 당시 사진.
AP 연합뉴스
1989년 축구팬 96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힐스보로 참사는 팬들의 잘못이 아니라 경찰의 태만에 의한 과실치사라는 평결이 나왔다.

이는 단순 사고사라는 과거 판결이 21년 만에 번복된 것이다.

그동안 힐스보로 참사 피해자와 유족들은 위험한 행동으로 대형 인명사고를 자초했다는 경찰과 정부 당국자들의 주장에 고통받아 왔다.

영국 중부 리버풀 인근 워링턴 법원에서 26일(현지시간) 열린 힐스보로 참사 진상 규명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7대 2로 이같이 결론 내렸다고 BBC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힐스보로 참사란 1989년 4월 15일 노팅엄 포레스트와 리버풀의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준결승 경기가 열린 셰필드 힐스보로 경기장에서 관중 96명이 압사한 사고를 가리킨다.

당시 경기장 입구로 수천 명의 팬이 몰려들자 안전사고를 우려한 경찰이 출구 일부를 열어 인파를 분산시키려 했는데, 오히려 이를 통해 지나치게 많은 관중이 입석으로 몰려들었다.

이미 입석이 만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던 입장객들이 계속 앞사람들을 밀어내자, 경기에 열중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관중 다수는 경기장에 설치된 철제 보호철망과 뒤에서 밀려드는 인파 사이에 끼어 질식사하고 말았다.

이날 배심원단은 당시 경기장 안전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두켄필드 전 총경에게 책임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켄필드는 한때 경찰이 아닌 팬이 문제의 출구를 개방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심리에서 입장 터널을 닫지 않은 것이 참사의 직접 원인이란 점을 인정하고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 완전히 ‘얼어붙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배심원단은 “완전한 직무태만에 의한 과실치사의 책임이 있다”면서 경찰의 치명적 실수로 힐스보로 참사가 유발됐다고 판단했다.

지금껏 경찰과 당국자들은 팬들이 술에 취해 있었고 통제불능 상태였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힐스보로 참사는 최근까지도 사고사로 간주돼 왔으나 대법원은 과거에 내려진 사고사 평결을 2012년 파기하고 진상조사를 명령했다.

진상조사 결과 경찰이 책임을 팬들에게 돌리려고 관련 사실을 은폐한 새로운 증거가 나왔고, 결국 경찰의 실수로 인한 과실치사로 평결이 뒤집힌 것이다.

데이비드 크롬프튼 사우스 요크샤이어 경찰서장은 경찰이 힐스보로 참사를 너무나도 잘못 다뤄왔으며 이번 판결을 명백히 받아들인다면서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참사 당시 힐스보로 경기장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던 경찰 관계자 다수는 형사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특히 책임자였던 두켄필드 전 총경에게는 과실치사 혐의 등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검찰은 이와 관련해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진상을 은폐했다고 주장하며 30년 가까이 ‘96명에 대한 정의’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이어 온 유족들은 법원 밖에서 평결 결과를 전해 들었다.

유족들은 박수를 치고 리버풀 팬의 응원가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야”(You'll Never Walk Alone)를 부르며 명예회복을 반겼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힐스보로 참사는 비극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기만과 거짓말의 얘기, 진실과 정의를 무너뜨린 조직의 집단방어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배심원단의 평결은 2년에 걸친 심리 끝에 나왔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의 평결 절차로 기록됐다. 약 1천명으로부터 증언을 청취했다.

이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비극으로 숨진 96명의 리버풀 팬들을 위해 오래전 이미 이뤄졌어야 할 정의를 진상조사를 통해 뒤늦게 제공한 기념비적인 날”이라면서 “오랜 기간 진실을 추구해온 힐스보로 캠페인 참여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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