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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축구가 있다면 에티오피아에는 바로 이것?

브라질에 축구가 있다면 에티오피아에는 바로 이것?

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입력 2016-04-26 11:04
업데이트 2016-04-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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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여기선 가난 극복할 유일한 무기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빈국에 속하지만 달리기에선 세계 1등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 마라톤을 2연패한 아프리카의 영웅 ‘맨발의 러너’ 아베베 비킬라(1932-1973), 2008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9초로 우승해 인간 한계로 여겨졌던 2시간 4분 벽을 깬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43).

 이들의 후예는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지난 19일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남녀 1위를 휩쓸었다. 가진 것 없는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은 오늘도 인생 역전을 꿈꾸며 달린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연합뉴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연합뉴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218㎞ 떨어진 작은 마을 베코지는 해발고도 약 2800m로 에티오피아 달리기의 산실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1만m 금메달을 딴 데라르투 툴루를 비롯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케네니사 베켈레,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티루네시 디바바 등이 이곳 출신이다. 지난 20여년간 이곳에서만 8명의 메달 리스트를 배출했다.

 베코지의 선수 대부분은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 어차피 집에서도 공부보다는 집안일을 돕거나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비를 내지 않는 이곳에 찾아온 경우가 많다.

에쉬투는 “대부분이 영국에서 기증받은 헌 운동화를 신고 훈련을 받고 있고, 3년 전 겨우 마련한 헬스장 운동 시설도 모두 오래된 중고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던 10평 남짓한 헬스장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고, 벤치 프레스의 가죽은 거의 찢어져 있었다.

선수 중 절반은 정부에서 선수 육성을 위해 지은 무료 시설에 살고 있다. 2년 동안 8인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훈련을 받은 뒤 두각을 나타내면 프로 클럽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진다.

만약 프로 선수가 된 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그야말로 인생이 뒤바뀐다. 이 일대에서 나고 자란 세계적인 마라토너 게브르셀라시에가 대표적이다. 그는 열 두 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신발을 가져봤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세계 대회를 석권한 뒤 벌어들인 상금 덕에 에티오피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 그는 현재 에티오피아 내 현대차 판매를 맡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리조트도 운영하고 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나는 물론 다른 동료 중에도 부유한 가정 출신은 아무도 없었다”며 “어린시절 맨발로 10∼20㎞ 떨어진 학교에 걸어다니던 힘든 경험이 선수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살아있는 롤모델’을 지켜보면서 어린 선수들은 매일 같이 이를 악문다.

 3000m 달리기 선수로 활동한 지 2년이 됐다는 소녀 티니쉬 두베(15)는 “달리기를 할 때는 오직 이겨야겠다는 생각만 한다”며 “언젠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해 에티오피아 국기를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국내 청소년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피카두 케베데(17)도 “경기에 나가면 반드시 이겨서 끝내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베코지 출신의 베켈레처럼 성공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공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두베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짓고 싶다고 했고 케베데는 어린 스포츠 선수들에게 옷과 신발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도 달리기를 즐긴다. 에티오피아가 상위권을 점하는 몇 안되는 종목 중 하나인 만큼 중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챙겨보는 것은 물론 생활 속에서 직접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주말에 수도 아디스아바바 중심지 메스켈 광장이나 은또또산에 가보면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달리기를 하는 모임도 많은 편이다. 세계적인 달리기 사교 모임인 ‘해시 하우스 해리어’의 아디스아바바 클럽은 생긴 지 30년이 넘었으며 1700명이 넘는 회원을 두고 있다. 회원 80∼100명이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공원이나 인근 들판, 산 등으로 달리기를 하러 간다.

 류지영 기자 supe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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