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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는 하룻밤의 불꽃놀이… 2라운드 기회 절실”

“신춘문예는 하룻밤의 불꽃놀이… 2라운드 기회 절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6-01-26 22:40
업데이트 2016-01-2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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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 신예 이은선·백수린이 말하는 ‘신춘문예 그 후’

“문인 선배들이 그래요. 신춘문예는 ‘하룻밤의 불꽃놀이’라고요. 화려한 시상식이 끝나면 찾아드는 건 적막뿐이니까요.”(이은선 작가)

이제 소설가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백수린(왼쪽), 이은선 작가는 “등단한 지 5~6년이 지나고 책을 내도 생계 고민은 늘 있다. 몇 만명의 독자를 거느린 작가가 되는 건 하늘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 같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이제 소설가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백수린(왼쪽), 이은선 작가는 “등단한 지 5~6년이 지나고 책을 내도 생계 고민은 늘 있다. 몇 만명의 독자를 거느린 작가가 되는 건 하늘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 같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올해도 전국의 문청들이 영혼을 ‘내다 판’ 신춘문예 시즌이 막을 내렸다. 매년 30여개 중앙·지방 일간지에서 문재(文才)를 뽐내는 신예들이 대거 배출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주요 문학출판사의 ‘간택’을 받고 문단으로 들어서는 이는 극소수다. 2010년 이후 신춘문예 출신 가운데 유망한 신인 소설가로 꼽히는 이은선(33·2010년 서울신문), 백수린(34·2011년 경향신문)을 만나 ‘신춘문예 그 후’를 들어봤다.

두 사람 모두 신춘문예에 작품을 낸 지 1년 만에 행운이 찾아왔다. 이 작가는 100번도 넘게 고쳐 쓴 단편소설로, 백 작가는 4차례의 문예지·신춘문예 투고 끝에 당선을 거머쥐었다. 이름을 내건 책을 세상에 내는 과정도 수월했다. 백 작가는 당선 소식을 받아든 지 한 달도 채 안 돼 문학동네와, 이 작가는 5개월 만에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와 각각 작품 계약을 맺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흰 모니터에 활자를 새겨넣는다. 밥벌이에 대한 막막함은 늘 따라다닌다.

이은선 생계가 가장 힘들었어요. 신춘문예 상금은 몇 번 잔치하면 사이버머니처럼 금방 없어져요(웃음). 계간지 투고가 1년 내내 있다 해도 편당 80만~120만원 받는데 3개월 동안 120만원 갖고 못 살잖아요. 문학과 관련된 알바(아르바이트)를 틈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죠. 지금도 전 흰 모니터가 제일 무서워요. 항상 ‘이게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란 두려움을 갖고 작품을 쓰기 때문에 ‘다음’을 쓰게 되면 기적 같아요.

백수린 신춘문예에 당선된 해엔 원고 청탁이 여섯 차례나 왔는데 2년 지나니 한 차례로 줄더라구요. ‘내가 못 써서 줄어드나’, ‘이제 청탁이 끊기나보다’ 하는 불안이 엄습했어요. 지금도 낮에는 백수 시절 하던 번역(불어)과 구민대학 강의 같은 알바를 하고 있어요. 소설은 밤에 쓰고요. 창작 활동에 지장은 있죠. 하지만 다른 일을 안 하면 먹고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이들에게 ‘쓴다는 것’은 ‘환희’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오늘도 온몸으로 글을 밀고 나간다.

백수린 문학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딴 일 알아보라’는 말을 다 한 번씩 들어 봤을 거예요. 그럼에도 ‘쓰고 싶다는 무섭고 끔찍한 질병’에 걸린 한 어쩔 수가 없어요(웃음). 독자와 교감하면 쓰는 기쁨이 더 배가되는데 그건 한 번 경험하면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거든요.

이은선 20~30년씩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분들에겐 배부른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문학적인 생체 시간은 각자에게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문학적인 시간이 빨라서 스물일곱에 등단했지만 박완서 선생님은 마흔에 시작하셨잖아요. 그 문학적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추동력은 문학의 힘이겠지요.

쓰고 싶어도 쓸 지면을 허락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큰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작가는 “우리는 운 좋게 문단에 입성했지만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당선되더라도 이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2라운드’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짚었다.

백수린 작품 한두 편으로 작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이 문제인 것 같아요. 특히 신춘문예는 그 판가름이 너무 빨리 나요.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요. 그래서 첫 작품이 주목을 덜 받더라도 다른 작품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안전망이 절실해요. 신인보다 안전한 기존 작가에 원고를 청탁하는 쏠림 현상이 있다 해도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별 출판사에 그걸 요구하기도 어려우니 잠재적 예술인 육성을 위한 지원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6-01-2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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