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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양력 도입 120년 지나도 음력과 ‘질긴 동거’

한반도 양력 도입 120년 지나도 음력과 ‘질긴 동거’

입력 2016-01-14 12:31
업데이트 2016-01-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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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 사용

나는 양력(陽曆)입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이죠. 한국에서 태어난 지 벌써 120살이 됐네요.

나의 기원은 이집트로 추정됩니다. 이집트에서 BC 18세기쯤 1년 365일의 저를 만들었답니다. 이 땅에서는 조선 말기 고종 때인 1896년 1월 1일부터 사용됐어요.

◇ “고종 임금 때 일입니다”

고종은 그날 태양력을 도입했다는 의미로 연호를 건양(建陽)으로 정했죠. 한 해 전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구성된 김홍집 내각이 추진한 을미개혁의 일환이었어요. 전국에 단발령이 내려진 것도 양력 첫 날인 그날이었죠.

이 땅에 날짜를 알려준 음력(陰曆)으로는 그날이 1895년 11월 17일이었죠. 조정이 양력을 도입하는 바람에 음력 개념인 을미년(乙未年)은 40여 일을 남겨두고 갑자기 사라졌고, 병신년(丙申年)도 영영 오지 않는 줄 알았죠.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이랍니다.

조선 백성은 음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죠. 내가 활용된 지 120년이 지나 얼마 안 있으면 병신년이 또 돌아오네요.

◇ “이중과세 논란이 컸죠”

일제는 나를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가하면서 설에 쉬지도 못하게 했죠.

설에 관청이나 학교의 조퇴를 금지하고 세배를 다니는 흰옷 차림의 사람에게 검은색 물을 채운 물총을 쏘아 얼룩지게 하며 괴롭히기도 했어요.

해방 후에는 정부가 양력을 퍼뜨리려 노력했답니다. 양력 1월 1일을 공식 설로 정하고서 이틀을 더해 사흘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죠.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음력만 챙겼어요. 내가 한국 땅에 들어온 지 90년이 지난 1986년까지도 국민의 83.5%가 음력설을 쇠었다고 하네요.

결국 정부는 1989년 음력설에 ‘설’이라는 이름을 되돌려줬고, 1990년부터는 음력설 전후 하루씩을 공휴일로 지정해 사흘을 쉴 수 있도록 했죠.

그해까지 양력설도 사흘을 쉬었기에 1990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양력설과 음력설 모두 사흘씩 쉰 해가 됐답니다.

양력설은 휴일이 1991년 이틀로 줄었다가 1999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당일 하루로 다시 깎였어요.

지금도 평시에는 나를 사용하면서도 설, 추석 등 명절 때는 꼬박꼬박 음력을 활용한답니다.

양력설인 1월 1일은 1년의 시작이라는 공식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음력설은 우리 민족이 전통 풍속으로 지켜온 명절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물론 양력설을 받아들인 일부 사람은 음력설은 그냥 공휴일로 보고 양력설을 쇠기도 한답니다.

두 번 설을 쇠기에 적잖은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 발생해 ‘이중과세(二重過歲)’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음력과 계속 함께해야겠죠”

최근에는 음력을 기준으로 추석을 쇠면 2000∼2029년 추석의 70%가 여름이라 농산물의 출하 시기가 앞당겨지고 가격도 비싸지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니 양력을 기준으로 추석 일을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어요.

물론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인 것은 전통이고 날짜를 바꾸는 것은 역사적 의미에 맞지 않는다는 반박의 설득력이 훨씬 크답니다.

설이나 추석 말고도 생일을 셀 때 나이 많은 분들은 아직도 음력으로 날을 챙기시죠. 역술가가 사주를 볼 때도 음력이 기준이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나와 음력은 계속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120년을 보냈습니다.

2016년이자 병신년인 올해도 우리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병신년의 시작은 대개 음력설(2월 8일)로 보지만, 사람에 따라 입춘(2월 4일)을 새해로 보기도 한답니다. 아무튼, 분명한 건 아직은 음력으론 을미년이죠.

<※이 기사는 올해 양력 도입 120년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세시풍속 사전 등을 참고해서 유래와 역사 등을 일인칭 이야기 전개 형식으로 소개한 기사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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