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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려한 마약왕 구스만…상표등록까지 시도

‘전설’이 되려한 마약왕 구스만…상표등록까지 시도

입력 2016-01-13 07:23
업데이트 2016-01-1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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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숀펜 동원한 전기영화 제작은 검거 단서 제공

멕시코 연방교도소를 탈옥한 지 6개월 만에 다시 잡힌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8)은 전설이 되고 싶어했을까.

언젠가는 완전히 잡혀 종신형을 살거나 사살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가 걸어온 길을 마치 마약조직계에 ‘영웅의 일대기’마냥 남기고 싶어했을 속마음을 엿보게 하는 일들이 속속 드러났다.

구스만은 2001년 첫 번째 탈옥을 했다가 2014년 2월 검거돼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알티플라노’ 교도소에서 작년 7월 다시 탈옥하기 전까지 17개월간 복역하면서도 변호사와 자신의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하는 일을 논의했다고 멕시코판 메트로신문이 12일 보도했다.

구스만은 앞서 2011년 의상에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 또는 ‘엘 차포 구스만’이라는 상표를 등록하는 것을 멕시코 특허청에 신청했으나 구스만이 당시 ‘수배가 된 인물’이라는 이유로 특허청이 거절했다고 한다.

상표 등록은 알레한드리아나 기셀로 구스만이라는 인물이 대행했고, 그는 구스만의 딸로 알려졌다.

‘엘 차포’는 165㎝가량의 단신인 구스만에게 붙은 별명이다.

상품 캐릭터로서 구스만의 가치는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선거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함께 작년 핼러윈데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림으로써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2009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인물로 선정한 구스만은 실제 그러한 규모를 훨씬 능가하는 부를 축적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어 단순히 돈을 벌려고 상표 등록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구스만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와 세계 최고 부호 자리를 다투는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보다 현금이 더 많을 것이라는 말도 나돈다.

이 현금은 세탁된 것이고, 부패한 정부 관리와 정치인들에게 부정한 결탁의 고리를 형성하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멕시코시티의 택시 운전사에게 “구스만과 슬림 중 누가 돈이 더 많으냐”고 물으면 “구스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멕시코 일간 엘 우니베르살은 구스만이 국내외에서 합법, 비합법적인 95개 기업을 거느리면서 최근 사업을 확장해 연간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보고서를 인용해 작년 7월 보도한 바 있다.

구스만의 부는 항공기를 포함한 잠수함까지 동원해 중남미에서 마약을 운송한 뒤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유통하는 과정에서 축적됐다.

마약조직계에서 ‘땅굴의 제왕’으로 불리는 구스만이 이끄는 카르텔 ‘시날로아’가 미국-멕시코 국경에 마약 거래용으로 파놓은 땅굴은 100개가 넘는 것으로 멕시코 검찰은 추정한다.

전설이 되고 싶어한 그의 생각은 상표 등록을 시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영화속 실존 인물이 되고 싶었던 그는 작년 7월 탈옥 후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에 관심을 보이자 조직원들을 시켜 영화 제작을 논의하다가 멕시코 검찰에 추적을 당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숀 펜과 멕시코 여자 배우 케이트 델 카스티요가 작년 10월 그를 인터뷰하려 했던 것도 은신처 노출의 빌미를 제공했다.

구스만으로부터 일자리를 얻는 등 생계를 지원받은 일부 고향 주민에게 구스만은 ‘의적이자 영웅’이나 다름없다.

시날로아의 주도 쿨리아칸에서는 2014년 3월 구스만이 멕시코 해병대에 체포되자 2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구스만이 태어난 시날로아 바디라과토 시에서는 학생들까지 나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구스만을 사랑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행진을 하기도 했다.

구스만이 지역민에 이바지하는 것은 1900년대 초반 쿨리아칸 일대에서 마약조직을 이끌었던 헤수스 말베르데라는 인물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베르데는 1907년 당국에 체포돼 사형을 당했으나 마약 밀매로 번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지역민들로부터 ‘마약 성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시날로아에는 말베르데를 추모하는 예배당이 들어서 있고, 그의 무덤이 있는 묘지에는 구스만의 부하 조직원을 포함해 최근 사살된 다른 마약조직의 괴수도 묻혀 있다.

시날로아에는 말베르데의 이름을 그대로 딴 ‘말베르데’라는 맥주가 팔린다.

구스만이 자신의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하려는 의도를 짐작게 한다.

구스만과 비교되는 또 한 명의 ‘마약 의적’은 1980년 콜롬비아에서 ‘메데인’이라는 카르텔을 이끌면서 콜롬비아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다.

구스만과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이름을 올린 적 있는 에스코바르는 장관과 대통령선거 후보 등 살인과 테러를 무차별 자행했으나 고향 사람들을 도와 지역에서 비호를 받았다.

에스코바르는 공공 부채를 갚겠다고 선언하면서 정치권에 뛰어들려고 했으나 44세 때인 1993년 정부군에 사살됐다.

에스코바르는 직접 정치를 하려다가 종말을 맞았지만, 구스만은 ‘양다리 걸치기’식으로 정권을 약삭빠르게 이용만 함으로써 에스코바르보다 한 수 위라고 마피아 이야기를 다룬 ‘고모라’의 저자이자 이탈리아의 언론인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평가하기도 했다.

에스코바르의 삶은 2014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배우 베네치오 델 토로가 주연한 ‘파라다이스 로스트’에서 이미 영화화됐다.

구스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의 스페인어 방송 네트워크인 우니비시온은 올해 말부터 ‘마약왕,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물을 내보낼 예정이다.

구스만은 15세 때부터 생계를 위해 마약 조직에 뛰어들어 1980년대 당시 멕시코의 최대 마약조직의 우두머리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라는 인물의 밑에 있다가 1989년 그가 체포된 뒤 조직원을 끌고나가 쿨리아칸 일대에서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했다.

멕시코 정보기관의 전 책임자였던 기예르모 발데스는 작년 7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구스만은 전설적 인물이 되고 있다”며 “지난 25년간 마약조직의 우두머리 자리를 굳건히 유지한 인물은 구스만 뿐”이라고 말했다.

구스만의 아들 이반 등이 최근 트위터에서 멕시코 정부의 ‘배신’을 비난하면서 “아버지는 다시 탈옥할 것”이라고 비교했지만 미국으로 신병 인도가 추진되고 있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구스만과 비교되는 말베르데와 에스코바르는 모두 사살되고 나서 악명을 떨친 전설로 남았지만, 구스만은 멕시코 또는 미국의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살면서 그야말로 ‘살아있는 마약계의 전설’이 되어야 할 형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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