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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입수 ‘자율협약’ 초안 들여다보니/여기저기서 구조조정 시급하다는데..법은 공백상태, 대체협약은 사실상 무용지물

본지 입수 ‘자율협약’ 초안 들여다보니/여기저기서 구조조정 시급하다는데..법은 공백상태, 대체협약은 사실상 무용지물

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입력 2016-01-13 17:03
업데이트 2016-01-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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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관련 법은 ‘공백’ 상태이고 이를 대체할 협약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협약에 가입했다가 중도 이탈해도, 가입을 아예 안 해도, 들 만한 ‘회초리’조차 없다. 법 공백으로 예외조항이 사라지는 바람에 은행이 부실기업 지분을 사들여 재무구조 개선을 지휘하기도 힘들어졌다.

13일 서울신문이 ‘기업 구조조정 자율 운영협약’(자율협약) 초안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협약 내용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과 유사해도 실효성 측면에서 ‘법’과 ‘협약’ 간의 간극이 컸다. 자율협약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법적 근거인 기촉법이 지난해 말로 효력이 끝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금융 당국과 금융권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지난 8일 금융감독원과 금융권 실무자들이 모여 첫 회의를 했다. 오는 18일까지는 최종안을 확정 짓겠다는 게 금융 당국의 방침이다.

채권단에 진 빚이 500억원을 넘는 기업에 대해서는 상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고 부실징후가 보이면 75%(신용공여액 기준) 이상 찬성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원칙은 기존 법규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출자전환 특례조항’이 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대출금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통해 주요 주주로 등극,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예컨대 자본금이 100억원인 A기업이 B은행에서 30억원을 빌렸다고 치자. A기업이 부실해졌을 경우 기존 기촉법 체제 아래서는 B은행이 대출금 대신 A기업 주식 30억원어치를 받아 회생작업을 추진해 왔다. 기업이 살아나면 주식을 팔아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고, 기업은 재기에 성공하는 윈·윈 구조다. 현행법상 은행은 기업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15% 초과해 소유할 수 없지만 워크아웃을 위해 기촉법에만 넣어놓은 예외조항이다.

협약에는 이 조항이 없다 보니 은행이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기 어렵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돈 꿔간 사람이 하는 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새로 돈을 쏟아부어 살리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은행들이 워크아웃에 소극적이면 기업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직행하거나 문 닫아야 한다.

자율협약인 만큼 강제성도 없다. 기촉법에는 금융위원회가 채권단이 부당한 행위를 하면 임직원 징계나 영업정지를 할 수 있게 돼 있지만 협약에는 이런 제재 수단이 없다. 협약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한 뒤 협약 내용을 안 지켜도 마찬가지다. 당장 보험사들은 “우리는 기업 채권도 별로 없는데 굳이 협약에 가입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협약 참여율도 관건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상호저축은행들도 채권단 내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들이 참여 안 하면 채권 재조정이 힘들어진다”고 털어놨다.

기촉법 공백기였던 2006년과 2011년 회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던 팬택 등이 채권단 자율협약에 실패하면서 법정관리를 신청한 전례도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구조조정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하지만 당장 법정관리 대란을 피하려면 국회가 기촉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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