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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블로그]농협 김 과장이 출근 직후 납치된 까닭은

경제블로그]농협 김 과장이 출근 직후 납치된 까닭은

이유미 기자
입력 2016-01-13 15:06
업데이트 2016-01-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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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 그는 지난 4일 첫 출근길에 오르며 새해 다짐을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시커먼’ 남성 두 명이 다가오더니 “잠시 같이 가자”며 양 팔을 끼었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이후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입니다.

납치극(?)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농협은 1년에 한번씩 계장(5급)에서 과장(4급)으로 올라가는 승진 시험을 치릅니다. 지금이 바로 그 ‘고시철’입니다. 농협중앙회와 은행 등에서 해마다 1500명정도 응시하는데 합격자는 10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경쟁률이 15대 1이 넘다 보니 해마다 이맘 때면 고시촌 못지 않게 몸살을 치릅니다. 올해 시험날짜는 오는 17일입니다. 6개월 전부터 집을 나와 서울 서대문 농협 본점 주변 고시원에서 머리를 싸매고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지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출제위원 선정 과정도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합니다.

출제위원은 중앙회와 은행 직원 중에서 60명가량 차출됩니다. 올해도 지난 4일부터 모처에서 합숙하며 문제를 뽑고 있습니다. 이들은 채점이 끝나는 19일까지 2주 동안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공정성을 위해 출제위원 당사자에게도 선정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습니다. 합숙 당일 인사부 직원들이 출제위원을 ‘납� ?� 오지요. 김 과장도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정작 해당 부서에서는 출제위원 차출을 몹시 부담스러워 한다네요. 2주 동안 업무 공백이 생겨서죠. 그래서 머리 싸움도 치열합니다. 출제위원으로 선정될 낌새가 보이면 미리 해당 직원을 휴가 보내 버리거나 사무실 외부로 탈출시킨다고 하네요. 한바탕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거지요.

농협에만 있는 이런 풍경도 내년이 마지막입니다. 노사 합의로 승진 고시를 2017년부터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은행들은 이미 일찌감치 없앴지요. 애초 승진 고시 취지는 ‘연차에 상관 없이 능력 있는 직원에게 승진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지만 “영업하기도 바쁜데 언제 시험공부 하느냐” “(상대적으로 시간 관리가 쉬운) 본점 직원이 더 유리하다” 등의 불만이 뒤따르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취임 뒤 1년은 낡은 관행을 바꾸는 데 쏟겠다”고 일성을 날린 김병원 차기 농협중앙회장이 유달리 지역주의, 온정주의가 뿌리 깊은 농협에 새로운 성과주의를 확산시킬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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