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단독] “체결 땐 北 심리 타격 크다며 황장엽이 韓·中 FTA 밀었다”

[단독] “체결 땐 北 심리 타격 크다며 황장엽이 韓·中 FTA 밀었다”

강병철 기자
입력 2016-01-11 22:52
업데이트 2016-01-12 01:5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FTA 교섭대표 역임’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 공개

고(故)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2009년 여름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북한을 위축시키기 위해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 공개됐다. 한·중 FTA가 본격 논의되지 않던 상황에 황 전 비서가 이 같은 주장을 하면서 정부도 한·중 FTA 조기 타결의 필요성을 확신하게 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미지 확대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가 11일 외교부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가 11일 외교부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중 FTA 교섭대표를 맡았던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는 11일 외교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최 전 대사에 따르면 당시 황 전 비서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 10여명과의 ‘비공식 간담회’에서 북한 정세를 설명하며 “남한이 통일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중국을 움직여야 하는데 한·중 FTA를 체결하면 북한이 큰 심리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그러면 남한이 주도적 위치에서 북한을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진 가운데 북한 핵심부가 한·중 협력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잘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최 전 대사는 “2004년 양국에서 FTA 얘기가 오갔지만 당시 협상을 개시할 여건이 아니었는데 황 전 비서가 먼저 그 얘길 꺼냈다”며 “북한 핵심부 출신인 그의 말을 듣고 당국자들도 한·중 FTA 조기 타결의 필요성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중 FTA 특혜관세 적용 품목에 개성공단 생산 품목을 포함시킨 데에도 황 전 비서의 주장이 하나의 근거로 작용했다.

최 전 대사는 우리 정부에서 손꼽히는 통상교섭 전문가로, 한·미 FTA, 한·유럽연합(EU) FTA, 한·중 FTA를 모두 주도했다. 외시 13기 출신으로 FTA교섭대표, 주제네바 대사를 거쳐 현재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통상교섭의 경험과 노하우를 모은 ‘최석영의 FTA협상노트’(박영사 펴냄)를 이번 주중 출간한다. 황 전 비서의 일화도 이 책에 소개됐다.

최 전 대사는 지난달 28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동북아에서는 통상교섭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 세계 통상교섭의 흐름은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 중심에서 양자 FTA로 갔다가, 이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메가 FTA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때 한·일이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은 경쟁하는 부분도 있지만 경제 분야에서 보완하는 요소도 많다”며 “한국이 TPP 참여를 하게 되면 일본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에 부품 소재 수출을 많이 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우리가 TPP에 가입하면 역내 공급 사슬 안에서 경제적 입지를 키울 수 있게 된다. 또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차원에서 미국이 일본의 협조를 적극 요구할 것이라는 게 최 전 대사의 설명이다. 한·중·일 FTA에 대해서는 “중·일 간 알력 다툼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중간자적 입장에서 협상을 이끌어가면 중·일도 협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전 대사는 “우리나라는 통상이 없으면 먹고살 수 없는 곳”이라며 통상교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통상 조직은 어디 부처에 소속되느냐와 관계없이 고도로 전문화된 인력을 키워야 한다”며 “통상은 테이블에 앉은 본부장과 장관이 그걸 해내야지 밑에서 오는 서류를 보고 뭔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 사진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2016-01-12 6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