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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교제 하지마...겨울 사복외투 입지마”…시대에 뒤진 학칙들

“이성교제 하지마...겨울 사복외투 입지마”…시대에 뒤진 학칙들

입력 2016-01-08 09:07
업데이트 2016-01-0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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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머리카락·이성교제 규제는 존치 찬반 의견 엇갈려

“추위나 더위는 사람마다 느끼는 기준이 다른데,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교복 위에 사복 외투를 입지 말라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강원도의 한 유명 사립고등학교에서 겉옷과 외투를 제한해 개성 실현의 자유와 복장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민원이 강원도교육청에 제기됐다.

이 학교 학칙에는 ‘예복의 경우 5월부터 9월까지 하복을 입고 10월부터 4월까지 동복을 입는다. 방한 외투를 입어야 할 경우에는 교복 위에 학교 겨울 외투를 입는다. 자유복 위에는 학교 겨울외투를 입지 않는다’고 돼있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해 한 학생이 국기에 대한 경례 중 무더위를 식히려고 손바람을 내자 국기와 관련된 규정을 어겼다며 벌점을 받았다.

해당 학교의 생활 규정(63조)에는 국기와 조국에 대해 불손한 경우 벌점 5점을 부여하게 돼 있고, 위반 내용이 심각하면 가정학습이나 퇴학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무더위를 식히기위해 손바람을 낸것까지 벌점을 준것은 가혹한 학칙 적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교육·인권·청소년 단체 모임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불량학칙’ 사례를 공개했다.

학교들도 자체적으로 불합리하거나 반인권적인 학칙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선 학교 현장에는 아직도 논란이 될만한 학칙들이 적지않다는 지적이다.

충남 논산의 한 고등학교도 한겨울에 실내 외투 착용을 금지하고 이 학칙을 위반하면 지도카드를 발급하도록 한다.

이성교제나 머리카락 문제에 대해 ‘좀 과도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여지가 있는 학칙을 운영하는 학교도 아직 있다,

대전시내 A고는 이성교제를 풍기문란으로 규정하고 해당 학생에게 벌점 5점을 부과한다. 일부 학생의 풍기문란을 이유로 야간자율학습때 쉬는 시간 20분을 10분으로 줄여 전체 학생에게 집단책임을 묻기도 했다.

B고는 머리카락 지도에 불응하면 퇴학까지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학교의 한 학생은 “머리를 군인처럼 빡빡 깎지 않으면 벌점”이라며 “일주일 안에 이행치 않으면 퇴학까지 시킨다”고 제보했다.

이와 관련, 전교조 대전지부 관계자는 “결국엔 학력신장을 위해 분위기를 잡으려고 무리한 학칙을 적용하는 것”이라며 “학부모들에게 ‘우리는 아이들을 공부에 전념시키려고 면학분위기를 이렇게 조성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실제로 퇴학당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복장 등이 불량한 학생을 급식 대상에서 제외하고, 두달에 한번꼴로 소지품 검사를 해서 벌점을 매기는 사례도 있다. 대전의 한 중학생은 “점심때 체육복을 입거나, 화장을 조금이라도 했거나, 치마가 좀 짧으면 밥을 못 먹게 한다”고 하소연했다.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교육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한 학생인권 조례가 시행된 서울, 경기 지역의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불만이 나온다.

한 고교생은 경기교육청의 학생인권 실태조사 심층 인터뷰에서 “휴대전화나 장신구 같은 학생 물품을 뺐거나 사복 착용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겉모습만 거창한 학생인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생을 위한 인권조례와 인권규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동안 각 시·도교육청은 학교를 대상으로 꾸준히 학칙 개정을 유도해 왔다.

경기교육청은 지난해 9∼11월 초·중·고교의 생활인권규정을 전부 점검해 14개 항목으로 정리해 정비하도록 주문했다.

그러나 일부 학교는 학칙을 개정한 이후에도 제대로 시행을 않는 경우도 있다.

인천의 경우 진보성향 교육감 취임 이후 학교생활규정을 분석해 지난해 1학기부터 두발 규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머리 길이는 귀밑 ○㎝로 한다는 식의 두발 규제 조항을 모두 삭제됐지만, 이후에도 일선 교육현장에선 지도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이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강원교육청 관계자는 “민원이 제기돼 시정을 요구해도 사립학교 설립 이념에 근거한 규칙이라는 이유로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전국 중·고교생에게 제보받아 지난해 11월 공개한 107건의 ‘불량학칙’ 사례 가운데 ‘겉옷과 외투’ 규제를 학칙에 명시한 19건에 대해 최근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의 학칙 개정은 필요하지만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라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같은 의견은 보수성향의 교원단체나 학부모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온다.

이들은 학생인권 보장에만 치우진 학칙 개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특히 복장, 용모, 두발 등을 놓고는 학교와 학생간, 학부모들 사이에서 다른 시각도 제기된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시대 흐름에 뒤처진 부분은 끊임없이 개선해야 하지만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인 수렴 과정을 거치는 민주성, 절차성과 더불어 학교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인권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의 의견이 모아진다면 ‘미성숙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작은 사회’로서 학교 질서와 학습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기교육청만 해도 상벌점제 폐지로 교실 붕괴 현상이 심하다”며 “학교 본연의 가치를 고려한 학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칙이나 학교생활인권규정을 바꾸려면 학교 구성원들의 동의와 규정개정심의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김주묵 춘천시학부모연합회 회장은 “불량 학칙은 학부모와 학교가 나서 자체적으로 먼저 고쳐야 한다”면서 “현재 학칙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사항인 만큼 학교운영위원회가 이를 인식하고 문제점을 잡아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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