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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할줄 모르는 무속인·굿값 수억 요구…이럴 땐 사기

굿할줄 모르는 무속인·굿값 수억 요구…이럴 땐 사기

입력 2016-01-03 10:41
업데이트 2016-01-0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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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없었다’ 주장으로는 사기죄 안돼…법원 “마음의 평정이 목적”

점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액운을 쫓게 해주겠다며 굿을 권유해 거액을 받아챙긴 무속인들에게 잇따라 실형이 선고됐다.

3일 법원에 따르면 굿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만으로는 ‘사기죄’로 인정하지 않지만, 굿을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닥칠 것처럼 현혹하고 상식선을 넘는 수천만원·수억원대의 굿 값을 요구한 경우 사기성을 인정해 처벌하고 있다.

민간 신앙의 영역이라는 점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으로 쉽게 인정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굿을 실제로 하지 않았거나 지나친 굿 값을 요구하면 처벌하는 추세다.

◇ 굿한다며 돈 받아놓고 안 하면 사기

굿을 해준다고 말해 돈을 받았음에도 실제로는 굿을 하지 않았다면 사기죄가 100% 인정된다. 신내림을 받지 않아 굿을 할 줄 모르는데도 굿을 해주겠다며 돈만 받아챙긴 사례도 많다.

무속인 이모(55·여)씨는 2011년 3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박모씨에게 “굿을 하지 않으면 남편에게 귀신이 붙어 이혼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삼촌이 죽을 것이다. 장군 할아버지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면 아들이 죽는다”며 굿값으로 33차례 1억6천502만원을 받았다.

이씨는 경남 지역의 한 주택가에 신당을 차려놓고 10여년간 무속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근 산자락에서 굿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굿을 했다는 객관적 증거인 사진이나 동영상을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사채를 쓰고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서도 무속인으로 지내며 매월 1천만원 이상 벌어들였다. 그러나 굿 값으로 받은 돈을 대부분 개인 용도로 썼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최근 이씨의 사기죄를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굿 해야한다”는 말에 빠져 전 재산 탕진

남편과 자식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자산가 A(48·여)씨는 어머니가 사망하자 극도의 상실감에 빠졌다. 가끔 무속인을 찾아 심경을 상담해오던 그는 2011년 1월 알고 지내던 무속인을 통해 다른 무속인 강모(51·여)씨를 알게 됐다.

강씨는 A씨 앞에서 죽은 할머니가 빙의된 것처럼 행세하면서 “내가 우리 손녀를 위해 해준 것이 없으니 너를 위해 굿을 해라”라고 말하고 잠시 후에는 빙의에서 깨어난 것처럼 “살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씻어야 한다. 20대에 아기를 유산시킨 일은 큰 죄”라며 굿을 권유했다.

A씨는 처음 굿 값으로 700만원을 건넨 뒤 “집에 귀신이 득실득실해 크게 아프거나 죽을 수 있다”는 등의 얘기를 듣고 2년간 40여차례 굿을 하며 강씨에게 13억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을 줬다.

심지어 강씨가 A씨의 죽은 어머니가 빙의한 것처럼 행세하며 “큰 법당으로 이사 가야한다”고 말하자 자신이 살던 강남구의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 모처에 있는 시가 7억원대의 건물을 사들여 함께 살기 시작했다. 1년 뒤에는 이 건물 소유권까지 강씨에게 모두 넘겨줬다.

결국 기소된 강씨는 A씨가 원래 무속신앙에 심취해 있었으며 자신은 몇몇 필요한 굿만 권유했으나 A씨가 다른 굿을 더 하자고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최근 강씨의 항소심에서 “피해자는 아파트 및 상가건물을 소유해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해왔고 특별히 절박한 고민이나 문제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도 굿을 하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곧 일어날 것처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며 사기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최재형 부장판사)도 한 사업가에게 “굿을 하지 않으면 사업에 관재(官災)가 생긴다”고 말하는 등 불안감을 조장해 2년여간 40차례 굿을 해주고 17억9천만원을 뜯은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이모(42)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피해자를 위해 2억5천만원을 공탁하고 합의했다는 사정 등이 참작돼 감형받았다.

◇ 굿 효과 없다고 고소?…“사기라고 볼 수 없어”

취업 문제로 고민하던 30대 초반의 여성 B씨는 2010년 초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점집을 하는 50대 무속인을 찾아갔다. 이후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종종 무속인을 찾아 고민을 털어놓던 그는 2013년 4월 회사 두 곳의 입사 시험을 앞두고 굿을 하기로 했다.

무속인은 “몸에 점점 살이 찌고 취직도 안 되는 것은 네 몸에 잡신이 붙어 있기 때문”이라며 “재수(財數)굿을 해서 잡신을 떠나보내고, 내가 모시는 ‘할머니 신’을 통해 취직문도 열어 주겠다”고 말했다.

B씨는 굿값 570만원을 주고 굿을 했지만 회사에 모두 불합격하자 무속인을 고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무속행위는 반드시 어떤 목적의 달성보다 그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굿 값이 일반적인 시장 가격과 비교해 과다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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