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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마을’ 세계유산 등재 과정과 의미

‘역사마을’ 세계유산 등재 과정과 의미

입력 2010-08-01 00:00
업데이트 2010-08-0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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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유산(Heritage)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기회는 오직 한 번밖에 없다. 유네스코는 한 유산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두 번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등재 여부를 최종 판가름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앞서 각국은 등재 가능 여부를 면밀히 따져, 해당 유산이 등재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회의 직전에 등재 신청 자체를 철회하는 일이 많다.

그런 점에서 유네스코 자문기구가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에 앞서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등재 후보지 심사보고서는 이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가늠자가 된다.

이번에 한국이 10번째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처럼 등재 후보지가 ‘문화유산’일 때는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라는 자문기구가 현지실사를 포함한 해당 유산에 대한 광범위한 심사를 한다.

한데 ‘한국의 역사마을’은 지난 6월에 공개된 ICOMOS의 평가보고서에서 ‘등재 보류’(Refer) 판정을 받았다. 등재 보류란 말 그대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미비점으로 말미암아 등재를 ‘보류’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류’가 등재 신청 자체를 해당 국가에 돌려보내는 ‘반려’(Defer)나, 등재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등재 불가’(Not Inscribe)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평가이긴 하지만, 등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반면, ‘등재권고’(Recommended for Inscription) 판정을 받으면 이변이 없는 한 그 유산은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를 통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지난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이 ICOMOS 평가보고서에서 바로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

통상 ‘등재 보류’ 판정을 받으면,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직전에 등재 신청을 철회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기 마련이다. 단 한 번밖에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조선왕릉과 함께 우리가 동시 등재를 추진한 ‘남해안 지역 백악기 공룡 해안’은 등재 보류 판정을 받는 바람에 우리 정부는 등재 신청을 철회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하회ㆍ양동마을에 대해서는 이런 우회 방법을 쓰지 않고 정공법을 채택했다. 이것이 결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이렇게 나간 데에는 비록 ICOMOS 평가보고서에서는 ‘등재 보류’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우리 정부는 하회ㆍ양동마을이 왜 등재 보류 판정을 받게 됐는지, 그 이유를 분석했다. 그 결과 ICOMOS 평가보고서는 두 마을이 지닌 역사적 가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 마을에 대한 통합관리 체계를 문제로 삼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인 진단이 나오면 처방전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ICOMOS가 지적한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에 따라 이미 ICOMOS 평가보고서가 공개되기 전인 지난 4월에 이미 중앙정부와 지자체, 문화유산보존활용전문가와 마을 주민대표까지 모두 참여한 통합관리 체계인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 대비는 ICOMOS 평가보고서를 예측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협의회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두 마을에는 경상북도와 문화재청이 함께 관여하는 통합관리 체계가 사실상 존재했다는 점을 유네스코에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2008년 말레이시아의 역사도시인 말라카(Malacca)와 조지타운(George Town. 喬治市)이 ICOMOS에서 ‘보류’ 권고를 받았음에도 보완책을 마련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 전례가 있어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과 외교통상부 등은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기간과 그에 앞서 유네스코 본부와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키를 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에 대해 ICOMOS가 우려한 통합관리 체계의 마련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데 주력했으며, 그것이 효과를 발휘해 마침내 두 마을을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난관을 뚫고 하회ㆍ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이는 한국의 세계유산 숫자 하나가 늘어났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역사도시’ 또는 ‘역사마을’은 단순히 마을이 오래됐거나 고건축물이 많다고 해서 등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역사마을의 문화가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까지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에서 주목한 것은 이곳에 이어져 내려오는 유교문화였다.

지난해 9월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현장을 찾아 실사 작업을 벌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현지 실사단은 마을 종갓집에서 손님을 맞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씨족 마을이 하나가 되어 손님을 대접하는 데도 관심을 뒀다.

실사단은 또 직접 한국 전통 의관을 갖춰 입고 사당 참배 의식에도 참여해 큰절을 올리는 체험도 했다.

이들 마을에서 ‘씨족공동체’가 살아 있고, 유교문화도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이해한 셈이다.

‘한국의 역사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서 작성에 참여한 전봉희 서울대 교수는 이번 등재에 대해 “유교 본산지인 중국보다 더 철저히 지켜온 한국 전통의 유교문화가 세계의 인정을 받은 셈”이라며 “서구에서도 선구적인 동양학 연구자들은 이미 이런 평가를 하고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갖는 의미 자체가 바뀌었다는 해석도 있다.

전 교수는 “과거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보편적 가치’를 강조해 (세계유산을) 서구중심적으로 해석했지만, 최근에는 다극화한 시각이 많이 수용되면서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의 세계유산 등재도 이런 다양성 논의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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