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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 오은선, 하늘 끝을 만졌다

[그의 삶 그의 꿈] 오은선, 하늘 끝을 만졌다

입력 2010-08-01 00:00
업데이트 2010-08-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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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최초의 한국 여성 산악인

많은 이들이 산행을 한다. 한국엔 산이 많다. 국토의 70%가 산이니 산악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효율성 면에서는 평지보다 못하겠지만 산은 드러나지 않게 주는 게 참 많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던가. 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산을 닮아 어질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산에서는 누구나 여유로워지고 친절해진다. 산이 지니고 있는 고요와 평안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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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에서 오은선 대장이 태극기를 들고 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에서 오은선 대장이 태극기를 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의 틈새에다 산을 끼워 넣는다. 이들에게 산행은 일시적인 휴식이자 삶의 재충전이다. 그렇지만 산행을 일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을 산에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등반가, 혹은 산악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오은선’이라는 이름이 지난 봄 한반도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를 완등한 세계 최초의 여성 산악인.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히말라야는 세상 밖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만년설로 덮인 정상에 오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꿈에서라도 한 번 오르고 싶은 산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목숨은 하나뿐이라 여분이 없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놀랍고 위대하게 미친(?) 여성을 만난다는 호기심과 설렘 또한 세상 밖의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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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과 기억

“많이 바쁘시죠?”

약속 장소인 서울 남산 ‘문학의 집 서울’ 나무 그늘에 놓여 있는 야외 원탁에 마주앉아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며 물었다.

“푹 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녀의 대답이 그랬다. 청바지에 감색 콤비 차림을 한 그녀는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있다면 아주 평범한 여성으로 느껴질 게 분명했다. 자그마한 키와 해맑은 웃음이 마치 소녀 같은. 그런데, 그런 신체 어디에다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의 놀라운 힘을 숨겨두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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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최초 완등지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오은선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만났다
히말라야 14좌 최초 완등지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오은선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만났다


여러 지면의 인터뷰들과 방송 매체 출연 자리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읽고 들은 터라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이 듣고 싶었다. 인간적이고 내면적인, 산악인을 떠난 한 여성이며 인간으로서의 ‘오은선’에 대해.

“그저 산이 좋아서 오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듣기에 따라 지극히 평범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그녀의 말은, 하지만 어떤 ‘뛰어넘음’의 경지에서나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일 법하다. 현실적인 욕망과 의지 너머에 있는 순수한 마음 말이다. “그저 산이 좋아서”라니, 산을 오르던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이 산을 오르는 모든 이유와 산에다 바치게 된 자신의 생을 이 말 한마디로 정리해서 내면화시켰던 거다.

최준(이하 최):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완등하셨는데, 올 4월 마지막으로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습니까?

오은선(이하 오): 그저 빨리 내려가고 싶었어요.

최: 그 상황을 TV에서 생중계하지 않았던가요?

오: 산은 올라가서 무사히 내려왔을 때에야 비로소 등반이 완성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최: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그래도 좀 더 수월할 것 같은데….

오: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속도는 빠르지만 한결 더 힘들어요. 체력도 한계에 이르고….

이 여성 등반가에게서 산에 대해 뭔가 좀 더 철학적이고 심오한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글렀겠구나 싶다. 만나보니 그녀는 환상 너머에 실제로 존재하는 아주 평범한 여성 등반가다. 세상은 그녀를 비범하고 놀랍다고 하지만 그건 그녀의 족적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 뿐, 실체로서의 그녀가 산에 대해 지니고 있는 철학은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게 그녀의 숨겨진 위대함이라 한다면 어떨까.

최: 키가 작아 보여서 의외인데요?

오: 154에서 155cm 사이에요. 줄곧 그 높이로 걸어 다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최: 작은 키가 등반에 유리한 점이 있습니까?”

오: 굳이 따져 보자면 높은 산을 오르는 데 불리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녀가 작은 점 하나로 배낭을 메고 빙벽과 크레바스의 설산을 오르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을 때 처음으로 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는 이야기, 대학 산악부에서 본격적으로 등반에 대한 기본기를 익히게 되었다는 이야기, 체력 측정을 했을 때 심폐기능이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남자 선수와 같았다는 이야기 등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진 그녀의 지난날들은 새삼스럽다.

그녀는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등반가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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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대장이 14좌 완등을 마무리 짓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펼치고 있다
오은선 대장이 14좌 완등을 마무리 짓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펼치고 있다




산, 그리고 삶

최: 완등을 했으니 이제 개인적인 삶의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하실지도 모르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오: 전 여전히 산이 좋아요. 등반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높은 산과 낮은 산은 그 나름의 매력이 다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참 아름다운 산들이 너무 많거든요. 산에 갈 수 있을 때까지 갈 계획이에요. 그리고 구체적인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지금은 생각할 겨를도 그럴 힘도 없어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단지 푹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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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등반을 마치길 기원하는 오은선 대장
무사히 등반을 마치길 기원하는 오은선 대장


그녀와 산은 아무래도 떼어낼 수 없는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산에 오를 때보다도 오히려 더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산만 있다. 무산소 등반, 홀로 산행을 하게 된 동기, 결혼을 하지 않은 점 등등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중요하지도 않다.

그녀는 여전히 산을 사랑하고 산행을 좋아한다.

글_ 최준 기획위원·사진_ 블랙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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