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맨 온 와이어

새영화-맨 온 와이어

입력 2010-02-05 00:00
수정 2010-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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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공중 퍼포먼스 영상으로 재현한 다큐

책상 위엔 각종 도면이 널브러져 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쌍둥이 빌딩)라는 글자가 언뜻 스친다. 텔레비전에서는 ‘워터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사임 연설이 흘러나온다. 인터뷰가 중간 중간 삽입되며 일단의 남녀들이 수상쩍은 행동을 이어간다. 마치 테러라도 벌일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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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는 이렇게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1968년 치통으로 치과를 찾았다가 우연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미국 뉴욕에 지어진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꿈을 갖게 된 17세 프랑스 청년이 여러 친구들과 함께 6년을 준비한 끝에 꿈을 이루는 과정을 좇아간다.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타기로 건너는 것이 그의 꿈.

이 청년은 1971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사이를, 1973년 호주 시드니 항구 다리의 철탑 사이를 건너며 예행연습을 했고, 쌍둥이 빌딩을 200차례나 치밀하게 답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1974년 8월7일 23살이 된 청년은 110층, 411.5m 높이의 쌍둥이 빌딩 사이에 길이 61m, 두께 2㎝, 무게 200㎏의 와이어를 연결하고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한 평행봉 하나 달랑 들고 하늘 위를, 구름 위를 걷기 시작한다. 쌍둥이 빌딩 모서리와 모서리 42m 거리를 와이어 위에 눕고,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고, 걸터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기도 하며 45분 동안 여덟 차례 왕복하고 내려온 그는 무단침입과 풍기문란 이유로 체포된다. 기자들은 질문을 퍼붓는다. “도대체 왜?” 짧게 답이 돌아온다. “이유는 없다.”

맨 온 와이어는 프랑스 곡예사 필리프 페티의 자서전 ‘나는 구름 위를 걷다’(2002)를 밑거름 삼아 영국 BBC에서 활동한 제임스 마시가 연출했다.

페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과정은 사진 몇 장만 남아 있기 때문에 영화는 필리프와 세기의 퍼포먼스에 가담한 친구 7명의 회상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퍼포먼스 전날 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옥상으로 잠입하는 과정은 재연 영상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세기의 예술적 범죄’를 지켜보는 재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영상이 없기 때문에 몇 장의 사진을 가지고 정적으로 처리된 쌍둥이 빌딩 사이 횡단 장면에는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No.1’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순간을 더욱 가슴 벅차게 만든다. 퍼포먼스를 성공한 뒤 페티가 친구들과 결별하게 되는 과정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2001년 테러로 사라진 쌍둥이 빌딩을 건설 당시의 자료 영상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2008년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과 심사위원상, 2009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27개 상을 받았다. 94분. 12세 관람가. 4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나다에서 단관 개봉.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2-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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