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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데이트]인터넷 이어 블로그 연재 첫 도전 작가 박범신

[주말 데이트]인터넷 이어 블로그 연재 첫 도전 작가 박범신

입력 2010-01-22 00:00
업데이트 2010-01-2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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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행복하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가 출판사 또는 매체에 끌려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매체를 지배하는 이상적인 연재 방식이죠.”

이제는 당연시되는 인터넷 소설 연재의 첫 문을 열어젖힌 것은 박범신의 장편소설 ‘촐라체’였다. 문단에서 독자와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글쓰기의 형식 변화를 이뤄낸 것이다. 새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다져 놓은 길을 숱한 작가들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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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매체에 끌려다니지 않고 지배하는 이상적 방식이 블로그 연재”라고 강조하는 박범신 작가.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작가가 매체에 끌려다니지 않고 지배하는 이상적 방식이 블로그 연재”라고 강조하는 박범신 작가.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정해진 틀없이 자유로운 글쓰기

그가 다시 한번 형식 실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포털사이트나 웹진이 아닌 개인 블로그(blog.naver.com/wacho)에 새 장편소설 ‘살인 당나귀’ 연재를 시작한 것. 어느 날은 원고지 30~40장 분량이 올라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달랑 4~5장 올라오기도 한다.

기존의 소설 연재가 ‘매일, 원고지 10장’이라는 정해진 틀을 갖고서 작가들을 독촉하고 강제했음을 감안하면 자유롭기 그지없는 형식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64)가 무색하게 짙푸르고도 서늘한 감성이 문단의 원로 반열에 오른 이의 이렇듯 끝없는 도전을 재촉하고 있다.

21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박범신은 “기존의 연재 메커니즘은 작가를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비록 원고료는 없지만 창작의 흥이 오르면 많이 쓸 수도 있고, 글이 막히면 조금 쉬면서 가다듬을 수도 있다.”고 새로운 형식 실험의 장점을 설명했다.

작가들이 연재했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 상당 부분을 뜯어고치는 ‘관행 아닌 관행’도 그의 실험을 자극했다.

그 누구보다 신문, 인터넷 등에 많은 연재를 해온 박범신이었기에 작가가 존중받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연재 형식이 더욱 간절했으리라.

●17년 만의 연애소설 ‘살인 당나귀’

블로그 연재를 시작한 ‘살인 당나귀’는 그가 17년 만에 다시 도전한 연애 소설이다. ‘대중 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던 박범신 아닌가. 안팎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드러나는 현상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몰릴 때 드러나는 사랑의 원형적 본능, 그 근원을 그리려 한다.”면서 “순수한 연애 소설을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조금 무거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감이 쉬 안 잡힌다. 그는 덧붙인다.

“사랑은 그 갈망만이 영원할 뿐이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흔한 연애소설은 아닐 거예요. 사랑의 본능이 멸망과 파국에 있음을, 자기 파멸을 향해 터져나오는 욕망과 포악한 관능, 잔혹한 질투심을 그릴 겁니다.”

설정부터 가볍지가 않다. 77세 노인이 17세 소녀를 사랑하는 이야기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70대 노()시인은 자신 안에 꼭꼭 억압됐던 욕망과 질투, 관능 등의 본능을 소녀를 통해 확인한다. 시 외에는 어떠한 잡문도 쓰지 않던 주인공(이적요)은 살인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프로이트가 얘기했듯 사랑은 에로스(성애)와 타나토스(죽음의 충동)로 이뤄져 있다. 파격적 성애 묘사로 논란이 됐으나 이제는 고전 문학 반열에 오른 ‘롤리타’가 떠오른다.

박범신은 “사회적 금기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갈망, 관능도 더욱 고통스럽게 타오른다.”면서 “77세의 존경받는 시인과 17세 소녀를 등장시킨 것도 그런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재는 3월 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단순한 형식 실험을 뛰어넘어 사랑의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고 싶다는 박범신. 억압된 욕망의 제 얼굴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그에게서 젊은 작가들과는 또 다른,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왜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1-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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