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안면도] 새들에게 길을 묻다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안면도] 새들에게 길을 묻다

입력 2011-02-20 00:00
수정 2011-02-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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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하늘, 하늘에 너무 많은 길들이 보인다. 내 흐린 눈으로는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눈 덮인 하늘에서 새들도 종종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너무 많은 길들이 보여, 갑자기 갈 곳이 많아진 새의 날개가 솟구치며 휘돌며 공중을 떠돌고 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펼쳐진 길의 그물에 걸려, 길의 현혹에 빠진 새들의 울음소리가 노을을 적시고 있다. 오직 한 갈래 길은 보이지 않는다. 공중에서 방황하는, 새들은 모가지만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저 차디찬 공중 표면 북국(北國) 하늘을 향해 새들은 오직 한 갈래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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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천국이라는 천수만은 오늘도 분주하다. 먹이를 찾는 새들과 길을 찾는 새들로 갯벌은 늘 분주하다. 떠나는 새들과 당도하는 새들의 중간 기착지 천수만은 새들의 낙원이다. 겨울 철새들은 저 멀고먼 시베리아 아무르 강에서 혹한기를 피해 남으로 이동한다. 남으로, 북으로 오고가는 동안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한데 그 중간 기점에 천수만이 자리하고 있다. 드넓은 갯벌과 간척지로 이루어진 천수만은 이동 철새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영양분의 공급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산 A·B지구로 나뉘어 있는 거대한 간척지 천수만, 그 한 켠에 홀로 외로이 떠 있는 간월도라는 섬이 있다. 누구일까? 저 외딴 섬에 암자를 지어 놓은 이는, 작은 섬 전체가 간월암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암자다. 만조 시에는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다. 새처럼 떠 있는 간월암에 오늘도 어김없이 노을이 진다. 이곳 간월암의 노을은 새들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노을빛에 물든 새들의 날개에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카메라의 초점에 시선을 맞춘다. 하나의 발견을 위해, 한 컷의 포착을 위해 옷깃을 여민다. 새의 표정을 담기 위한 출사였으리라. 기다림의 연속임을 안다. 운이 좋다면 새의 눈물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간월도 부근은 많은 종의 새들을 탐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월동지다. 노을에 잠긴 바다의 품이 유독 크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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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을 품에 안은 천수만은 좀처럼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속내를 내보이는 건 이방인의 서툰 발걸음뿐이다. 넓고 넓은 간척지 논에서 이따금 청둥오리들이 날아오른다. 새들에게 길을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나는 저들에게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일렬로 줄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은 꼭 화살 같다. 새들은 서로의 깃에 머리를 묻고 체온을 나눠가진다. 나도 저 무리에 들어 온기를 나눠 갖고 싶다. 저 새들의 말을 알아듣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발자국 소리를 죽여도 새들은 경계의 눈빛을 지우지 않는다. 지상에 발자국을 찍는 사람들과 공중에 발자국을 찍는 새의 경계. 그 지울 수 없는 경계 밖에서 나는 경이의 눈빛으로 새들을 본다. 새들은 새들끼리 평온하다. 천수만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새들만의 세상이다.

서산 방조제를 끼고 40번 국도로 접어든다. 홍성군 남부면에 위치한 남당항을 찾아든다. 최근 당일치기 먹거리촌으로 각광받고 있는 남당항까지 약 5㎞의 이 길은 갯벌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남당항은 봄이면 주꾸미와 꽃게, 가을이면 대하와 전어, 겨울에는 석화(굴)와 새조개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작고 한적한 포구다. 지금 남당항에는 새조개 축제가 한창이다. 특히 주말 저녁에는 수십 개의 포장마차와 횟집에서 피어나오는 조개 굽는 냄새가 주당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새조개 몇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게다가 저렴한 가격까지. 일몰 때 방파제 위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운 좋게 수천 마리 새떼들의 군무도 곁들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남당항이다.

노을이 질 때의 갯벌은 온통 황금빛이다. 이곳에 오면 살아 있는 갯벌의 생명력을 만끽할 수 있다. 갯벌에 기우뚱 서 있는 목선들이 물때를 기다리고 있다. 저 배들만큼 바닷길을 잘 아는 게 있을까.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 시인은 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고 했다. 뻘의 말씀이라니!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만큼 뻘이 소중하다는 뜻일 게다. 비단 사람에게만 갯벌이 귀할까. 갯벌은 지구의 심장이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라. 갯벌에서 요동치는 맥박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것이 어디 말씀뿐이랴. 용솟음치는 생명의 기운이 온몸을 감쌀 것이다. 함민복 시인이 그의 시에서 말한 말랑말랑한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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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두에기, 방포, 꽃지, 샛별, 장곡, 바람아래… 이 아름답고 예쁜 말들은 모두 안면도에 있는 해수욕장의 이름들이다. 섬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안면도 해변을 달린다. 곱디고운 모래사장이 섬 서쪽으로 빙 둘러쳐져 있다. 안면도는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해 여름철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꽃지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넓고 일몰이 아름다워 계절을 가리지 않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할미, 할아비바위가 운치를 더하는 꽃지해수욕장의 일몰은 우리나라 3대 낙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이를 대동한 가족이라면 고려시대 삼별초의 항쟁이 깃든 안면도 병술만, 대몽항쟁의 연착지 병술포를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역사기행이 될 것이다.

안면도의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길을 달린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마음속의 길은 늘 있다가도 사라진다. 길은 경계 밖에 있다가도 느닷없이 경계 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길에 불을 밝히는 것은 길 떠난 사람 그 자신의 몫이다. 길 떠남, 떠난다는 것은 곧 발견의 시작이다. 떠나지 않고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시간이다. 길 위에서 우리가 찾는 시간 자체가 우리네 삶이므로. 떠나자. 세상 모든 경계엔 꽃이 피어 있다. 길 위에서 접는 페이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니, 모든 그대들이여! 길 따라 마음 따라 훌훌 떠나보자.

TIP

가시는 길

자가용을 이용해 안면도를 간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해미나들목을 빠져나가 태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홍성IC로 나가는 편이 서산방조제도 지나며 철새들도 볼 수 있어 더 좋다.

서산방조제 지나 안면도 가는 길

홍성나들목을 빠져나와 해미 방면(좌회전)으로 29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안면도 이정표가 나오는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614번 지방도로)을 한다.

그렇게 614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40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을 하면 서산방조제를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안면도를 가기 위해서는 40번 지방도로로 계속 직진하여

천수만 방조제를 건너 안면도 방면인 649번 지방도로를 타면 된다.

중간에 40번 지방도로의 남당항과 서산방조제의 간월도에 들려보는 것도 좋다.

글·사진_ 고영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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