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람이 몰리지 않는 호젓한 북쪽으로 발길을 돌릴 일입니다. 단풍 행락객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 가을엔 더욱 그렇습니다.
경기도 파주는 은근히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최전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그곳에 전쟁의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율곡 이이의 고향 마을이 있고, 예쁜 현대 건축물들이 늘어선 언덕, 헤이리도 있지요. 평화와 상생의 공간이 된 임진각 평화누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오가며 기러기 등 철새들의 군무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이만하면 가을 근교 여행지로 제격이지 싶습니다.
전쟁 상흔 지운 임진각 평화누리
예전 임진각은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던 곳이었다. 굳은 표정의 초병이 지키던 ‘자유의 다리’와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 등에선 늘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새 단장한 임진각 평화누리는 평화롭다. 그리고 밝다. 주말엔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번다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분단과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형 야외공연장 ‘음악의 언덕’과 수상카페 ‘카페안녕’,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있는 ‘바람의 언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말이면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주차장에서 시민들의 메시지를 새겨 넣은 조각 작품을 지나면 연못 한가운데에 찻집 ‘카페안녕’과 만난다. 코르텐이란 녹슨 철강 마감재로 외벽을 마감한 모습이 마치 100년도 넘게 서 있었던 느낌을 준다. 연못을 건너면 바람의 언덕이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연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언덕에선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바람의 언덕 옆으로는 인상적인 대나무 작품 네 점이 서있다. ‘통일부르기’란 이름의 조형물로, 점점 키가 자라는 모습에서 점점 다가오는 통일의 그날이 연상된다. 임진각은 옛 콘크리트 건물을 철거하고 현대적인 건축물로 새로 태어났다.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던 곳이 하릴없이 스러져 간 것에 아쉬움도 남는다. 전망대와 식당, 커피숍,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여행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임진각 앞에는 전쟁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자유의 다리’는 1953년 6·25 전쟁 포로 교환을 위해 설치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포로들은 차량을 이용해 경의선 철교(임진각 철교)까지 온 뒤,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자유의 다리 끝은 굳게 닫힌 철문이다. 그곳부터 민간인통제구역이다. 철문엔 통일을 염원하는 메모 리본과 깃발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자유의 다리 초입엔 경의선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6·25 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기차다. 녹슨 기관차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 12월 말 평양으로 가던 기차는 파주 장단역 어름에서 심한 공격을 받았고, 파괴된 채 반세기 넘도록 비무장지대에 방치되다가 2009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031)953-4854.
360살 느티나무 그늘아래 율곡 유적지
파주는 조선시대 대표적 경세가 중 한 명인 율곡 이이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외가인 강원도 강릉이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자신의 호 또한 파평면 율곡리 지명을 따 지었다고 전해진다. 6세 때인 1541년 처음 파주 땅을 밟은 이후, 그는 주로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시기에 파주를 찾았다. 그만큼 그의 숨결이 머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법원읍 동문리 율곡 유적지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 한곳에 모여있다. 율곡 유적지에 들면 가을 무르익은 너른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단풍 든 느티나무 아래 너른 풀밭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여느 유적지들과 달리 풀밭에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관리인이 없어 좋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건물의 크기를 뛰어 넘고도 남는다. 특히 강인당 양 옆에 버티고 선 느티나무의 위세는 대단하다. 360년을 살아온 나무의 밑둥치는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둘러야 맞닿을 정도다. 자운서원 옆은 가족묘다. 율곡의 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합장묘 등 13기가 조성돼 있다. 아울러 율곡 신도비와 자운서원 묘정비 등 여러 문화재도 주변에 함께 들어서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031)958-1749. 율곡이 시상을 즐겼다는 화석정도 둘러 보는 게 좋겠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화석정에 오르면 임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물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엔 율곡이 8세 때 처음 지었다는 시 ‘팔세부시’(八歲賦時)가 걸려있다. 화석정 주변의 밤나무는 2005년 파주시에서 일본산 리기다 소나무를 베고 새로 심은 것들이다. 당시 파주시는 율곡의 탄생설화에 맞춰 999그루의 밤나무와 한 그루의 나도밤나무를 식재했었다.
예술이 흐르는 문화공간 헤이리
임진각 평화누리, 율곡 유적지 등 옛것을 두루 살피고 자유로 주변으로 나오면 현대식 건물과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헤이리와 만난다.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갤러리와 카페, 공방, 서점, 레스토랑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곳이다.
헤이리는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문화비즈니스맨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이 1998년 탄현면 50만㎡(15만여 평) 부지에 자연과 사람, 문화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로 건설하기 시작한 마을이다. 문화가 창작되고, 동시에 향유되는 공간이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인들의 힘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다.
마을 규정에 따라 집의 60%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또한 높이 12m를 넘는 건 없다. 담도 없고, 인위적 재질의 페인트를 칠한 건물도 없다. 집이 곧 미술관이고 카페고 공연장이다. 또 마을 전체의 75% 이상은 자연 그대로 둬야 한다. 오래된 굴참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외벽에 12개 구멍을 낸 갤러리가 있고, 마을 가운데 작은 시냇물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를 5개나 만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다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대가로 지갑을 열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글 사진 파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파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승용차는 자유로를 기준 삼는 게 편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자유로 끝자락에 있다. 율곡 유적지는 당동 나들목을 이용한다. 헤이리는 성동 나들목에서 지척이다. 서울역~임진각을 오가는 경의선을 이용해도 된다.
▲맛집 적성면 두지리의 원조두지리매운탕은 민물고기 매운탕을 잘한다. 959-4508. DMZ 해마루촌(www.haemaru.org)에서는 장단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경기도 파주는 은근히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최전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그곳에 전쟁의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율곡 이이의 고향 마을이 있고, 예쁜 현대 건축물들이 늘어선 언덕, 헤이리도 있지요. 평화와 상생의 공간이 된 임진각 평화누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오가며 기러기 등 철새들의 군무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이만하면 가을 근교 여행지로 제격이지 싶습니다.
냉전의 상징에서 평화와 상생의 공간으로 변모한 임진각 평화누리. 파주의 ‘착한 풍경’ 가운데 첫손 꼽히는 곳이다. 연못 너머 바람의 언덕 위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3000여개의 바람개비는 자연과 소통을, 조금씩 성장하는 대나무 조형물은 통일의 순간을 각각 상징한다.
전쟁 상흔 지운 임진각 평화누리
예전 임진각은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던 곳이었다. 굳은 표정의 초병이 지키던 ‘자유의 다리’와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 등에선 늘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새 단장한 임진각 평화누리는 평화롭다. 그리고 밝다. 주말엔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번다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분단과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형 야외공연장 ‘음악의 언덕’과 수상카페 ‘카페안녕’,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있는 ‘바람의 언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말이면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주차장에서 시민들의 메시지를 새겨 넣은 조각 작품을 지나면 연못 한가운데에 찻집 ‘카페안녕’과 만난다. 코르텐이란 녹슨 철강 마감재로 외벽을 마감한 모습이 마치 100년도 넘게 서 있었던 느낌을 준다. 연못을 건너면 바람의 언덕이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연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언덕에선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바람의 언덕 옆으로는 인상적인 대나무 작품 네 점이 서있다. ‘통일부르기’란 이름의 조형물로, 점점 키가 자라는 모습에서 점점 다가오는 통일의 그날이 연상된다. 임진각은 옛 콘크리트 건물을 철거하고 현대적인 건축물로 새로 태어났다.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던 곳이 하릴없이 스러져 간 것에 아쉬움도 남는다. 전망대와 식당, 커피숍,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여행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임진각 앞에는 전쟁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자유의 다리’는 1953년 6·25 전쟁 포로 교환을 위해 설치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포로들은 차량을 이용해 경의선 철교(임진각 철교)까지 온 뒤,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자유의 다리 끝은 굳게 닫힌 철문이다. 그곳부터 민간인통제구역이다. 철문엔 통일을 염원하는 메모 리본과 깃발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자유의 다리 초입엔 경의선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6·25 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기차다. 녹슨 기관차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 12월 말 평양으로 가던 기차는 파주 장단역 어름에서 심한 공격을 받았고, 파괴된 채 반세기 넘도록 비무장지대에 방치되다가 2009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031)953-4854.
360년 동안 자운서원을 지켜온 느티나무.
360살 느티나무 그늘아래 율곡 유적지
파주는 조선시대 대표적 경세가 중 한 명인 율곡 이이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외가인 강원도 강릉이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자신의 호 또한 파평면 율곡리 지명을 따 지었다고 전해진다. 6세 때인 1541년 처음 파주 땅을 밟은 이후, 그는 주로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시기에 파주를 찾았다. 그만큼 그의 숨결이 머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법원읍 동문리 율곡 유적지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 한곳에 모여있다. 율곡 유적지에 들면 가을 무르익은 너른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단풍 든 느티나무 아래 너른 풀밭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여느 유적지들과 달리 풀밭에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관리인이 없어 좋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건물의 크기를 뛰어 넘고도 남는다. 특히 강인당 양 옆에 버티고 선 느티나무의 위세는 대단하다. 360년을 살아온 나무의 밑둥치는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둘러야 맞닿을 정도다. 자운서원 옆은 가족묘다. 율곡의 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합장묘 등 13기가 조성돼 있다. 아울러 율곡 신도비와 자운서원 묘정비 등 여러 문화재도 주변에 함께 들어서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031)958-1749. 율곡이 시상을 즐겼다는 화석정도 둘러 보는 게 좋겠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화석정에 오르면 임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물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엔 율곡이 8세 때 처음 지었다는 시 ‘팔세부시’(八歲賦時)가 걸려있다. 화석정 주변의 밤나무는 2005년 파주시에서 일본산 리기다 소나무를 베고 새로 심은 것들이다. 당시 파주시는 율곡의 탄생설화에 맞춰 999그루의 밤나무와 한 그루의 나도밤나무를 식재했었다.
헤이리 마을 한편에 서있는 조형물 ‘인사하는 사람’.
예술이 흐르는 문화공간 헤이리
임진각 평화누리, 율곡 유적지 등 옛것을 두루 살피고 자유로 주변으로 나오면 현대식 건물과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헤이리와 만난다.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갤러리와 카페, 공방, 서점, 레스토랑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곳이다.
헤이리는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문화비즈니스맨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이 1998년 탄현면 50만㎡(15만여 평) 부지에 자연과 사람, 문화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로 건설하기 시작한 마을이다. 문화가 창작되고, 동시에 향유되는 공간이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인들의 힘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다.
마을 규정에 따라 집의 60%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또한 높이 12m를 넘는 건 없다. 담도 없고, 인위적 재질의 페인트를 칠한 건물도 없다. 집이 곧 미술관이고 카페고 공연장이다. 또 마을 전체의 75% 이상은 자연 그대로 둬야 한다. 오래된 굴참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외벽에 12개 구멍을 낸 갤러리가 있고, 마을 가운데 작은 시냇물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를 5개나 만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다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대가로 지갑을 열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글 사진 파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파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승용차는 자유로를 기준 삼는 게 편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자유로 끝자락에 있다. 율곡 유적지는 당동 나들목을 이용한다. 헤이리는 성동 나들목에서 지척이다. 서울역~임진각을 오가는 경의선을 이용해도 된다.
▲맛집 적성면 두지리의 원조두지리매운탕은 민물고기 매운탕을 잘한다. 959-4508. DMZ 해마루촌(www.haemaru.org)에서는 장단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2011-10-20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