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비평의 힘으로 반세기 지켜온 ‘시인 공화국’

지성과 비평의 힘으로 반세기 지켜온 ‘시인 공화국’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25-12-14 23:51
수정 2025-12-1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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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돌 맞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강제 폐간 후 제호 바꿔 재창간
창립 멤버 ‘4K’ 중 김주연 교수
“문지의 탄생은 문명사적 전환”
시인선 통해 한국문학 외연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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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학과지성사 창사 50주년 기념식에서 문지의 주축이 됐던 문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립 멤버인 독문학자 김주연(앞줄 왼쪽 네 번째)을 중심으로 앞줄 왼쪽부터 김태환, 성민엽, 김광규, 김주연, 오생근, 김화영, 황지우, 정과리, 우찬제(뒷줄 왼쪽부터), 이광호, 이인성, 권오룡. 문학과지성사 제공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학과지성사 창사 50주년 기념식에서 문지의 주축이 됐던 문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립 멤버인 독문학자 김주연(앞줄 왼쪽 네 번째)을 중심으로 앞줄 왼쪽부터 김태환, 성민엽, 김광규, 김주연, 오생근, 김화영, 황지우, 정과리, 우찬제(뒷줄 왼쪽부터), 이광호, 이인성, 권오룡.
문학과지성사 제공


“우리는 말을 할 수 있기 위해 말을 하며, 생각할 수 있기 위해 생각한다. 그리고 반복하지만, 희망할 수 있기 위해 희망한다.”

반세기 지성과 비평의 힘으로 우뚝 선 ‘시인 공화국’.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문지)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0주년 기념식에서 소설가 이인성(72)은 ‘문학과지성’ 통권 41호 편집자의 말을 가지고 왔다. 그는 “말다운 말, 생각다운 생각을 펼쳐 나가야 하는 게 앞으로 문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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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 창간호(1970). 문학과지성사 제공
문학과 지성 창간호(1970).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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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창간호(1988).  문학과지성사 제공
문학과 사회 창간호(1988).
문학과지성사 제공


문지 2세대 편집동인인 이인성의 이 말이 깊은 울림을 준 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문학과 지성’ 41호가 세상에 출간된 적 없는 잡지라서다. 1975년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에서 창립한 문학과지성사는 5년 전인 1970년 창간된 계간 ‘문학과 지성’을 모태로 한다. 그러나 ‘문학과 지성’은 1980년 창간 10주년 기념호를 제작하던 중 신군부 탄압으로 강제 폐간됐다. 지령 40호로 종간된 ‘문학과 지성’의 뜻을 이어받아 1988년 ‘문학과 사회’로 제호를 바꿔 재창간돼 오늘에 이른다. 결국 ‘문학과 지성’ 41호는 당시 편집동인들에 의해 교정쇄 50부만 제작돼 소수의 문인들과 나눠 가졌다. 제대로 복각된 것은 창사 40주년이었던 20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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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당시 문학과지성사 통의동 사옥. 문학과지성사 제공
1978년 당시 문학과지성사 통의동 사옥.
문학과지성사 제공


해직 기자 출신으로 문지 초대 대표이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소설가 한강을 발굴했던 김병익(87)은 이날 건강상의 이유로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녹음된 음성으로 축사를 전한 그는 “그때 우리는 ‘문학이요, 지성이요’ 하고 높이 외쳐 불렀지만, 우리는 이제 밝은,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문학과 지성은’ 하고 인사의 절을 올린다”고 했다.

문지 창립 멤버 4K(김병익·김주연·김치수·김현) 중 이날 유일하게 정정한 모습으로 연단에 오른 김주연 숙명여대 독문과 명예교수는 “한국의 지성 사회가 한 몸으로 요구한 문지의 탄생은 문명사적 전환이었다”며 “지금부터는 인공지능까지 포괄하는 전면적인 융복합의 자세와 능력으로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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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이자 문학과지성사 1세대 편집동인. 왼쪽부터 김현, 김치수,김병익, 김주연으로 일명 ‘4K’로 불린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이자 문학과지성사 1세대 편집동인. 왼쪽부터 김현, 김치수,김병익, 김주연으로 일명 ‘4K’로 불린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문지가 ‘시인 공화국’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갖게 된 건 ‘문지시인선’ 덕분이다. 1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1978년)부터 지난달 출간된 627호 ‘비신비’(백은선·2025년)까지, 문지시인선은 자유와 전위의 미학을 추구하며 언어를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실험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자는 문지를 ‘시인의 왕국’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문지에는 ‘왕’이 없다. 문인들 40여명이 나눠 가지고 있던 주식을 액면가로 사들이면서 2018년 소유구조를 전환해 ‘문지문화협동조합’을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문지를 지배하는 주인은 ‘문학공동체’ 그 자체가 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올해 25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은 시인 김사라, 15회 문지문학상 수상자 유선혜(시)·서장원(소설)에 대한 시상식도 아울러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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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3세대 편집동인이자 현재 문지의 대표인 이광호(62) 문학평론가는 “아무도 개인의 지분을 가지지 않는 독특한 문지의 소유구조를 보며 저는 (이곳이) 문학적 우정의 장소이고 공동체라고 생각한다”며 “문지의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이 공동체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2025-12-1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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