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물사리 소송’으로 본 조선 법제사

‘다물사리 소송’으로 본 조선 법제사

입력 2010-02-20 00:00
수정 2010-02-2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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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노비로소이다 】 임상혁 지음 너머북스 펴냄

드라마 ‘추노’의 노비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도망친다. 그런데 1586년 나주에서는 한 양인(良人·일반 백성)이 스스로를 노비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주 관아에서 벌어진 이 희한한 ‘노비 소송’의 주인공은 ‘다물사리’라는 이름의 여든 살 노파. 대체 이 노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간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는 이 ‘다물사리 소송’을 중심 서사로, 역사소설의 옷을 입힌 법제 연구서다. 책은 노비를 자처하는 여든 노파와 진실을 추적하는 재판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조선의 사회와 제도를 아우르면서, 한 편 이야기 속에 조선의 법제사를 녹여 넣었다.

우선 글쓴이 임상혁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다물사리 소송’의 전말을 고문서 5건을 통해 밝혀낸다. 경북 안동 학봉 김성일(1538~1593)의 고택에서 나온 이 판결문들은 그간 용도가 알 수 없었으나 임 교수의 연구로 판결문임이 밝혀졌다.

문서를 보면 다물사리는 실제 양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뇌물로 관리를 매수해 성균관 공노비로 신분을 위장하고 노비 노릇을 한 것이다. 물론 거짓말은 수사 끝에 탄로가 났다. 사정은 이랬다.

다물사리의 남편은 양반의 사노비. 당시에는 부모 중 한쪽이 노비면 자식들도 노비가 됐는데, 제도대로라면 그녀의 자식들도 사노비가 돼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식들을 사노비보다는 대우가 좋은 공노비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성균관 노비가 된 것이다. 당시에 부모 중 한쪽이 공노비면 자식들도 공노비가 됐다.

후손을 사노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이 법정투쟁기를 통해 임 교수는 조선 소송제도의 특징까지 짚어본다. 공정성이 의심될 때 다른 관할로 재판을 이관하는 ‘관할 상피제’, 3차례까지 제소할 수 있는 ‘심금제도’ 등을 소개하면서, 그는 “조선의 소송제도는 합리적으로 정비돼 있었다.”고 평한다. 나아가 노비제를 중심으로 조선의 신분제, 또 사회제도 전반의 특징까지도 함께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조선 사회의 근간인 노비제에 대한 총체적 논의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1만 5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2010-02-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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