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모세의 굴욕’… 홍수예방 8조 쏟고 침수

베네치아 ‘모세의 굴욕’… 홍수예방 8조 쏟고 침수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20-12-09 17:56
수정 2020-12-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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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조수 급상승으로 침수 피해 반복
17년 동안 바다에 78개 인공장벽 설치
작동 기준보다 8㎝ 낮은 조수 예보 의존
지역풍에 조수 높아지자 속수무책 당해
랜드마크 산마르크 광장 등 물에 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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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해상 차단벽(모세·MOSE)이 무용지물이 돼 물에 잠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크 광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보행용 임시다리를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60억 유로(약 8조원)를 들여 모세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도시가 또다시 물바다가 됐다. 베네치아 로이터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해상 차단벽(모세·MOSE)이 무용지물이 돼 물에 잠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크 광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보행용 임시다리를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60억 유로(약 8조원)를 들여 모세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도시가 또다시 물바다가 됐다.
베네치아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홍수는 이례적이지 않다. 최근 2년 동안만 봐도 매년 초겨울 며칠 동안 베네치아의 75% 이상은 물에 잠긴 상태였다. 사람들은 ‘조금씩 가라앉아 사라질 수도 있는 도시’라며 베네치아를 여행 버킷리스트에 올린다. 믿음과 다르게 학계에선 베네치아 침하가 2000년 이후 멈췄다는 측량도 내놓아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8일(현지시간) 2명의 사망자를 내고 산마르크 광장을 비롯한 베네치아 전역을 다시 집어삼킨 홍수는 예측할 수 없었던 이례적 사건이자 인재(人災)로 평가됐다. 지난해까지 없었던 해상차단벽 ‘MOSE’(모세)가 여름에 완공돼 ‘겨울 홍수 없는 베네치아’라는 기적에 대한 믿음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아드리아해 바닷물이 베네치아와 연결되는 수로 입구 3곳에 높이 30m의 철 구조물 78개로 세운 차단벽이다. 선박 통행에 방해가 안 되도록 평소 바닷물 속에 있지만, 48시간 전 예보에서 도시 쪽으로 밀려오는 조수(만조) 수위가 1.3m보다 높아지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 최대 3m 높이의 만조를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날 만조 수위는 최고 1.5m로 1.3m보다 높았기 때문에 모세가 작동해야 했지만, 앞서 기상 당국이 만조 수위를 1.22m로 낮게 예측한 탓에 모세는 멈춰 있었다. 17년 동안 60억 유로(약 8조원)를 투입해 만든 모세를 가동조차 못해 보고 홍수 피해를 또 입은 것이다. 이에 모세 작동기준을 만조 수위 1.2m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116개 섬이 409개 다리로 연결된 도시인 베네치아에선 국지성 폭우나 하천 범람 때문에 홍수가 생기는 게 아니라 비바람과 범람한 바닷물이 섞여 ‘짠물 홍수’를 일으킨다. 특히 매년 9월부터 이듬해 4월 지역풍 영향으로 바닷물 만조 수위가 높아지는 ‘아쿠아 알타’(높은 물이란 뜻)가 발생하면 베네치아는 홍수에 취약해진다. 만조 수위가 1.1m가 되면 보행자 대상 경계령이 발동되고, 그보다 5㎝만 수위가 더 올라도 명물인 곤돌라 운행이 중단된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1983년 모세 설계라는 대공사를 기획하고, 2003년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베네치아는 모세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원래 2011년 가동 예정이었지만 기술적인 난관, 예상보다 불어난 건설 비용, 정계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부패 스캔들을 거치며 완공이 지연됐다. 결국 지난 7월에야 완공된 모세를 시험가동했고, 이후 몇 주 뒤 1.35m 만조의 바닷물을 막아 내는 성과도 냈지만 정작 이번에 홍수가 날 때 모세는 멈춰 있었다.

‘모세의 기적’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베네치아의 실망감은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시민단체 베네치아닷컴을 이끄는 마테오 세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겨울 홍수라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모세가 있으면 홍수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20-12-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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