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가끔 듣는 소리가 ‘왜 신문은 나쁜 뉴스만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다.즉,마음이 훈훈하고 따뜻해지는 뉴스는 왜 거의 전달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다.정말로 신문과 방송을 접하다 보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 또는 사회 고발적인 뉴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특히 요즈음처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복잡한 현안들이 산재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물론 가끔씩은 인간미가 넘치는 미담이 눈에 띄지만 기사의 양도 적고 지면배치도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한다.
일부 저널리즘 학자들은 언론이 범죄 등 사회고발 뉴스를 전달함으로써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환경감시기능을 하며 동시에 나쁜 뉴스(bad news)를 많이 전달하여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얼핏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왜냐하면 권력 행사 과정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는 뉴스를 전달함으로써 여론을 주도하고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기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론은 기쁘고 마음이 즐거운 좋은 뉴스(good news)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는다.아니 신문의 게이트키핑과 편집과정에서 순위상 나쁜 뉴스에 밀려서 지면에 게재되지 않는다.실제로 언론은 때때로 독자들이 진정으로 어떤 뉴스를 보고 싶어 하는가와 상관없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뉴스를 선정하는 경향이 크다.예를 들어 저널리즘 교과서에는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뉴스’라고 적혀있다.즉,언론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것은 뉴스가치(newsworthiness)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언론은 좀 더 기이하고 폭력적이고,일탈적인 것에 뉴스가치를 두는 관행에 젖어있다.그래서 신문 지면은 좋은 뉴스가 극소수인 반면 대개의 경우 그다지 좋지 않은 뉴스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점은 어느 신문이나 비슷하며,서울신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지난 한 주 동안의 서울신문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지난주(1월25∼31일) 서울신문에 실린 좋은 뉴스는 1월26일 1건(기획면 ‘오리농장+체험관광으로 활로’),1월27일 1건(기획면 ‘상황버섯 독자브랜드로성공사례’),1월28일자 2건(사회면 ‘18년 만에 되찾은 양심’,사람과 사람면 ‘119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 등 4건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었다.1월30일자와 31일자에는 좋은 뉴스라고 할 만한 뉴스가 없었다.이러한 점은 서울신문이 상대적으로 발행면수도 적고 인력이 부족한 탓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거의 매일 유사하게 전달되는 나쁜 뉴스들이 자칫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좋은 뉴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또 좋은 뉴스는 사건사고나 공식적 소스를 통해 제공되는 뉴스처럼 쉽게 얻어지기보다는 제보나 기획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수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이 너무나 전통적인 뉴스가치관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지적 받아 마땅하다.즉,좀 더 좋은 뉴스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기사를 기획하고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나쁜 뉴스와 좋은 뉴스를 균형감 있게 담아냄으로써 독자들이 우리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고 건전한 세계관을 갖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
일부 저널리즘 학자들은 언론이 범죄 등 사회고발 뉴스를 전달함으로써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환경감시기능을 하며 동시에 나쁜 뉴스(bad news)를 많이 전달하여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얼핏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왜냐하면 권력 행사 과정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는 뉴스를 전달함으로써 여론을 주도하고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기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론은 기쁘고 마음이 즐거운 좋은 뉴스(good news)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는다.아니 신문의 게이트키핑과 편집과정에서 순위상 나쁜 뉴스에 밀려서 지면에 게재되지 않는다.실제로 언론은 때때로 독자들이 진정으로 어떤 뉴스를 보고 싶어 하는가와 상관없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뉴스를 선정하는 경향이 크다.예를 들어 저널리즘 교과서에는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뉴스’라고 적혀있다.즉,언론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것은 뉴스가치(newsworthiness)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언론은 좀 더 기이하고 폭력적이고,일탈적인 것에 뉴스가치를 두는 관행에 젖어있다.그래서 신문 지면은 좋은 뉴스가 극소수인 반면 대개의 경우 그다지 좋지 않은 뉴스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점은 어느 신문이나 비슷하며,서울신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지난 한 주 동안의 서울신문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지난주(1월25∼31일) 서울신문에 실린 좋은 뉴스는 1월26일 1건(기획면 ‘오리농장+체험관광으로 활로’),1월27일 1건(기획면 ‘상황버섯 독자브랜드로성공사례’),1월28일자 2건(사회면 ‘18년 만에 되찾은 양심’,사람과 사람면 ‘119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 등 4건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었다.1월30일자와 31일자에는 좋은 뉴스라고 할 만한 뉴스가 없었다.이러한 점은 서울신문이 상대적으로 발행면수도 적고 인력이 부족한 탓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거의 매일 유사하게 전달되는 나쁜 뉴스들이 자칫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좋은 뉴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또 좋은 뉴스는 사건사고나 공식적 소스를 통해 제공되는 뉴스처럼 쉽게 얻어지기보다는 제보나 기획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수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이 너무나 전통적인 뉴스가치관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지적 받아 마땅하다.즉,좀 더 좋은 뉴스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기사를 기획하고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나쁜 뉴스와 좋은 뉴스를 균형감 있게 담아냄으로써 독자들이 우리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고 건전한 세계관을 갖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
2004-02-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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