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세상/택시강도에 온정 베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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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01-12 00:00
수정 2004-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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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도와주시니까 너무 고맙고 죄송합니다.죄 값을 받겠습니다.”,“제 맘 편하자고 한 일입니다.불도 안 들어오는 방에 여름철 홑이불만 깔려 있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배가 고파’ 택시강도짓을 한 10대의 딱한 사정을 알고 피해자인 운전사가 도움을 줘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이창수(사진·48·택시기사)씨는 지난해 10월17일 새벽 6시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문모(18·무직)군을 태웠다.5분쯤 택시를 타고 가던 문군은 강도로 돌변,흉기로 이씨의 손가락을 베고 3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이씨는 “10대 한 명에게 당한 것이 어이없고 괘씸해” 두 달 남짓 경찰들과 함께 인근지역에서 ‘잠복근무’를 한 끝에 지난 6일 문군을 붙잡았다.경찰조사 결과 문군은 같은 수법으로 4차례나 강도짓을 해 택시기사들로부터 21만원을 빼앗은 것으로 밝혀졌다.

문군은 검거 당시 초췌한 모습으로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이틀을 굶는 바람에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고개를 떨궜다.문군의 말이 맘에 걸린 이씨는 경찰과 함께 강동구 암사동 문군의 집을 찾았다.난방도 되지 않는 2평 남짓한 옥탑방에는 낡은 옷가지와 여름철 홑이불 한 장이 요 대신 깔려 있었고,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책장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문군의 범행 사실을 전해 들은 문군의 누나(23·점원)는 퀭한 표정으로 맥을 놓고 앉아 있었다.

문군 남매는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6~7년 전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고아나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수입이라고 해봤자 누나가 옷가게에서 일해 버는 50만원이 전부였다.그나마 경기불황으로 장사가 안돼 몇달째 월급을 못받는 바람에 월세 30만원인 방세가 넉달째 밀려 있었다.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지만 중학교 중퇴에 벌써 전과 3범,게다가 2년 전 사고를 당해 다리까지 저는 문군에게 사회는 냉랭했다. 이씨는 자식 또래인 문군 남매의 사정에 가슴이 미어졌다.“차라리 그 때 돈을 더 많이 빼앗겼더라면 그 돈으로 남매가 라면이라도 한 그릇 더 먹었을 텐데…”라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문군 생각에 잠을 설치던 이씨는 이틀 뒤 라면과 솜이불을 준비해 다시 문군의 집을 찾았다.문군의 누나에게 10만원을 건네준 이씨는 “문군이 형기를 치르는 동안 옥바라지도 하고 누나를 돌봐주겠다.”면서 “문군이 어서 죄값을 치르고 나와 새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2004-01-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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