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배고픈 유전자

책/배고픈 유전자

입력 2003-12-24 00:00
수정 2003-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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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런 러펠 셸 지음 / 이원봉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현대는 ‘비만의 시대’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3년 보건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호주 등 3개국은 비만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비만 선진국’이다.

특히 미국은 10명 중 3명이 비만환자이며 매년 30만명 이상이 비만 관련 질병으로 죽는다.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인도에서도 과체중과 비만은 중산층의 풍토병이 되고 있다.비만은 이제 ‘풍요병’ ‘선진국병’이라기보다는 전세계에 만연된 ‘신세기 증후군’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린다.

●산모 영양상태가 아이들 비만 좌우

‘배고픈 유전자’(엘런 러펠 셸 지음,이원봉 옮김,바다출판사 펴냄)는 비만이 유전자 및 환경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살핀,비만에 관한 유전학적 보고서다.저자(미국 보스턴대 교수)가 밝히는 비만의 진짜 원인은 탐욕이나 과식,의지박약,게으름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너무도 약해 쉽게 상처받고 쉽게 굴복하는 우리 몸 안의 ‘배고픈 유전자’ 때문이다.이 연약한 유전자는 끊임없이 음식을먹게 만들어 우리를 비만의 길로 이끈다.

과학자들은 산모의 영양상태가 나쁠 수록 아이가 비만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1945년 네덜란드에 기아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출산은 이어져 수천명의 아기가 태어났다.1970년대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중년이 된 이 ‘네덜란드 대(大)기아’ 시절의 신생아들을 연구하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어머니가 임신 첫 6개월 동안 기아를 겪은 경우 아기의 80%가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연구팀은 자궁 안에서 충분히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태아의 유전자는 쉽게 배고프도록 프로그램화돼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탄산음료와 지방질 음식이 비만 유전자를 만든다는 가설도 흥미롭다.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 ‘코스라에’ 원주민들은 파파야와 빵나무 열매를 먹던 시절만 해도 어느 민족보다 날씬했다.하지만 베이컨,콜라,콘 비프 등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이제 섬 주민들은 대부분 육중한 덩치를 끌고 어기적거리다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심장마비로 죽는다.

저자는 이런 현상은 “유전자가 기름진 음식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기름진 음식에 중독된 사람들은 적절한 수준보다 훨씬 높은 칼로리를 섭취해야만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어려서부터 탄산음료나 지방질 음식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비만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빌렌도르프 비너스상도 고도 비만

책은 비만의 역사도 살핀다.‘롤리 폴리(roly poly)’,즉 땅딸보의 역사는 깊다.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굴된 구석기 시대 비너스상은 기괴하게 뚱뚱하다.이 빌렌도르프 비너스상은 고도 비만의 경우 흔히 나타나는 무릎 기형을 보인다.그리스에는 악명 높은 대식가들이 많았다.옥좌에서 왕명을 내리다 잠이 들기도 했다는 고대 그리스 헤라클레이아의 폭군 디오니시우스가 대표적인 예다.게걸스럽게 먹는 잔치를 좋아했던 로마 사람들도 비만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로마의 여인들은 까다로운 남편과 아버지의 요구에 맞추려고 스스로 굶었고 그러다가 죽는 일도 많았다.관용을 몰랐던 스파르타 사람들은 뚱뚱해진 시민은 무조건 추방했다.

비만은 오늘날 중세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를 능가하는 공포의 질병이 됐다.이 책은 비만의 위험성을 새삼 확인해주고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우리 ‘비만과학’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2003-1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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