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단의 몫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야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첫째,우리 집단이 갖는 몫은 1000원,타 집단의 몫은 800원(200원 차이)인 경우.둘째,우리 집단 몫은 700원,타 집단 몫은 300원(400원 차이)인 경우.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을 선호할까.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자못 흥미롭다.절대적 보상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 집단과의 차이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와 비교할 때 내가 좀 더 낫기를 바라는 것처럼,우리 집단이 상대 집단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심리를 지니기 때문에 두번째 경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운동회 때 단순히 청·백군으로만 나뉘어도 사람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자기 편 응원을 하는가를 떠올리면 이러한 ‘내 집단 편애’ 현상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한번쯤 짚고 넘어갈 일은 극대화와 관련한 심리이다.즉,상대 집단과의 차이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인간 속성에 대한 것이다.경우는 좀 다르지만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집단간 양극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우리 사회가 종종 경험하는 대로 집단으로 의사를 결정하면 개인이 의사를 결정할 때보다 훨씬 극단적인 경향을 띤다.가령 사용자측과 노조라는 두 집단이 의사를 결정할 일이 생겼을 때 사용자측은 사용자의 규범 쪽으로,노조는 노조의 규범 쪽으로 더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왜일까? 이는 집단 토론을 거치면서 구성원들의 지배적 성향이 더욱 강화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집단간 대립이나 경쟁 상황이 되면 ‘내 집단 편애’심리가 발동하면서 자기 집단에 최대한 유리한 결정을 하려 하고,이것이 곧 상대 집단과의 차이를 최대한 유발하는 양극화의 원인을 제공한다.
서구식 가치관을 숭상하는 탓인지 요즘 들어 흔히 우리 문화의 특성을 대표하는 집단주의가 개인주의에 비해 단점이 많다고 인식하는 경향이지만 실제로 개인보다 집단의 목표를 먼저 생각하느냐,집단보다 개인의 목표를 먼저 생각하느냐 문제는 굳이 우열을 가릴 성질이 아니다.각각의 미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단,집단주의는 개인주의에 비해 양극화가 더 잘 일어날 수있는 문화적 토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특히 국가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오랜 격변기를 헤쳐와야만 했던 우리나라 실정을 고려할 때 그렇다.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마음 착한 서민들의 소망과는 달리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양극화의 폐해가 나날이 도를 더하고 있다.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그릇된 집단주의적 문화 토양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천민 자본주의와 결합한 이기주의가 덧칠되어 매우 왜곡된 집단주의,나아가 양극화로 발전하는 최근의 양상은 더욱 걱정스럽다.그렇다고 이에 맞설 만한 뾰족한 수도 없으니 답답하고 난감할 따름이다.
사회 각계의 양극화 현상과 관련해 딱히 책임을 물을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 늘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곳이 있다.미디어다.여러 연구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양극화를 유발하는 집단간 갈등은 미디어에 노출될 때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무엇이든 미디어가 다루면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일반적인 사실로 인식하게 된다.집단간 갈등 또한 실제보다 과장되게 느끼기 쉬운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가령 집단 시위와 관련한 보도는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그런데 우리 주변 미디어의 현실은 어떤가.자칫 선동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표제가 신문 독자의 눈길을 끄는가 하면,가장 ‘시위다운’ 인상적(?)인 장면이 컬러 사진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송 뉴스가 주는 충격과 파장은 더 말할 나위 없다.이런 지적이 사실보도에 충실했던 미디어에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이런 간단한 설명은 어떨는지.미디어는 누가 뭐래도 현대 사회 스타이고,스타에겐 그만큼 사회적 책임감이 요구된다.
오 미 영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와 비교할 때 내가 좀 더 낫기를 바라는 것처럼,우리 집단이 상대 집단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심리를 지니기 때문에 두번째 경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운동회 때 단순히 청·백군으로만 나뉘어도 사람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자기 편 응원을 하는가를 떠올리면 이러한 ‘내 집단 편애’ 현상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한번쯤 짚고 넘어갈 일은 극대화와 관련한 심리이다.즉,상대 집단과의 차이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인간 속성에 대한 것이다.경우는 좀 다르지만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집단간 양극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우리 사회가 종종 경험하는 대로 집단으로 의사를 결정하면 개인이 의사를 결정할 때보다 훨씬 극단적인 경향을 띤다.가령 사용자측과 노조라는 두 집단이 의사를 결정할 일이 생겼을 때 사용자측은 사용자의 규범 쪽으로,노조는 노조의 규범 쪽으로 더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왜일까? 이는 집단 토론을 거치면서 구성원들의 지배적 성향이 더욱 강화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집단간 대립이나 경쟁 상황이 되면 ‘내 집단 편애’심리가 발동하면서 자기 집단에 최대한 유리한 결정을 하려 하고,이것이 곧 상대 집단과의 차이를 최대한 유발하는 양극화의 원인을 제공한다.
서구식 가치관을 숭상하는 탓인지 요즘 들어 흔히 우리 문화의 특성을 대표하는 집단주의가 개인주의에 비해 단점이 많다고 인식하는 경향이지만 실제로 개인보다 집단의 목표를 먼저 생각하느냐,집단보다 개인의 목표를 먼저 생각하느냐 문제는 굳이 우열을 가릴 성질이 아니다.각각의 미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단,집단주의는 개인주의에 비해 양극화가 더 잘 일어날 수있는 문화적 토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특히 국가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오랜 격변기를 헤쳐와야만 했던 우리나라 실정을 고려할 때 그렇다.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마음 착한 서민들의 소망과는 달리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양극화의 폐해가 나날이 도를 더하고 있다.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그릇된 집단주의적 문화 토양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천민 자본주의와 결합한 이기주의가 덧칠되어 매우 왜곡된 집단주의,나아가 양극화로 발전하는 최근의 양상은 더욱 걱정스럽다.그렇다고 이에 맞설 만한 뾰족한 수도 없으니 답답하고 난감할 따름이다.
사회 각계의 양극화 현상과 관련해 딱히 책임을 물을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 늘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곳이 있다.미디어다.여러 연구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양극화를 유발하는 집단간 갈등은 미디어에 노출될 때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무엇이든 미디어가 다루면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일반적인 사실로 인식하게 된다.집단간 갈등 또한 실제보다 과장되게 느끼기 쉬운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가령 집단 시위와 관련한 보도는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그런데 우리 주변 미디어의 현실은 어떤가.자칫 선동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표제가 신문 독자의 눈길을 끄는가 하면,가장 ‘시위다운’ 인상적(?)인 장면이 컬러 사진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송 뉴스가 주는 충격과 파장은 더 말할 나위 없다.이런 지적이 사실보도에 충실했던 미디어에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이런 간단한 설명은 어떨는지.미디어는 누가 뭐래도 현대 사회 스타이고,스타에겐 그만큼 사회적 책임감이 요구된다.
오 미 영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2003-11-2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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