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를 이끌어 낸 이번 ‘벨벳혁명’의 선봉장은 단연 미하일 사카쉬빌리(35) 국민행동당 당수다.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피플파워를 보여준 그는 미국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혀 왔고 24일 차기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발표했다.니노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지만 혁명의 실질적 주역은 사카쉬빌리라는 평가다.
실제로 그는 지난 3주 동안 야당과 지지자들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지난 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권 여당 승리를 선언하는 총선 결과를 발표하자 서부 지역으로 직접 내려가 시위대를 규합해 상경,이틀만에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부 온건파 야당 지도부가 셰바르드나제 대통령과의 타협 가능성을 타진할 때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또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외신들을 통해 반정부 시위대의 입장을 직접 대변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친미 성향을 보이는 사카쉬빌리 당수는 특히 미국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친미성향이 러시아의 우려를 불러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실제로 카스피해의 석유 파이프라인을 흑해와 터키로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그루지야의 차기 정부 구성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간에 벌써부터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의 사카쉬빌리 당수가 정치에 입문한 때는 지난 1995년.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여당인 ‘시민연합’의 대표를 역임하고 5년 뒤인 2000년에는 법무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하지만 각료들이 부정 축재로 마련한 호화 빌라의 사진과 내역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키면서 1년만에 실각하고 정권과 등을 졌다.지난해 결국 시민연합을 탈당,국민행동당을 창당하고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선봉에 섰다.
사카쉬빌리 당수는 이번 혁명을 계기로 꼿꼿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남기게 됐지만 이같은 강경 이미지는 한편으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대중에 친숙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또한 유명세에 집착하는 대중선동가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유학 경험에서 비롯된 서구적 사고방식과 개혁 마인드가 장점으로 꼽히는 그는 스스로도 “혼란을 수습할 능력이 내게 있다.”며 대권욕을 숨기지 않아 앞으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피플파워를 보여준 그는 미국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혀 왔고 24일 차기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발표했다.니노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지만 혁명의 실질적 주역은 사카쉬빌리라는 평가다.
실제로 그는 지난 3주 동안 야당과 지지자들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지난 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권 여당 승리를 선언하는 총선 결과를 발표하자 서부 지역으로 직접 내려가 시위대를 규합해 상경,이틀만에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부 온건파 야당 지도부가 셰바르드나제 대통령과의 타협 가능성을 타진할 때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또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외신들을 통해 반정부 시위대의 입장을 직접 대변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친미 성향을 보이는 사카쉬빌리 당수는 특히 미국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친미성향이 러시아의 우려를 불러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실제로 카스피해의 석유 파이프라인을 흑해와 터키로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그루지야의 차기 정부 구성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간에 벌써부터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의 사카쉬빌리 당수가 정치에 입문한 때는 지난 1995년.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여당인 ‘시민연합’의 대표를 역임하고 5년 뒤인 2000년에는 법무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하지만 각료들이 부정 축재로 마련한 호화 빌라의 사진과 내역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키면서 1년만에 실각하고 정권과 등을 졌다.지난해 결국 시민연합을 탈당,국민행동당을 창당하고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선봉에 섰다.
사카쉬빌리 당수는 이번 혁명을 계기로 꼿꼿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남기게 됐지만 이같은 강경 이미지는 한편으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대중에 친숙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또한 유명세에 집착하는 대중선동가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유학 경험에서 비롯된 서구적 사고방식과 개혁 마인드가 장점으로 꼽히는 그는 스스로도 “혼란을 수습할 능력이 내게 있다.”며 대권욕을 숨기지 않아 앞으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2003-11-2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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