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병원을 찾았다.남자는 점잖아 보였고,경상도 말씨가 두드러진 아내는 건장하고 건강해 보였다.말수 없이 성실할 것 같은 가장과 활달하고 적극적인 아내여서 어울리기는 할 것 같은데,남녀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선생님,글쎄 이 인간이 바람을 피워 나한테 병을 옮겼다 안캅니까? 고 3짜리 자식 키우느라 정신이 엄써 인제야 알았습니더.관계만 하면 온몸이 후끈거리고 치밀어 오르는 게 성병을 옮아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자는 첫 마디부터 히스테리 징후를 보였다.관계후 몸이 가렵고,가슴의 살이 터지고,명치 끝으로 뭔가 치밀어 오른다는 등 두서없이 주워 섬기는 얘기를 10분이나 들어야 했다.
여자를 진정시킨 뒤 남자하고 얘기를 나눴다.남자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할말이 없습니다.제 일이니까 다른 건 신경쓰실 것 없고,검사나 좀 해주십시오.” 이런저런 변명도 없이 시종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에이즈와 성병 검사부터 실시했다.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질병이 없는 상태였다.여자에게 결과를 설명하고 남자에게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고 나니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남자는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누군가를 좋아했을 것이고,그 상대 역시 그랬을 터인데,때를 잘못 만나선지 그 사랑은 결국 유치한 촌극으로 끝나고 말았다.그 여자 역시 남들보다 더 열심히,그리고 성실하게 살려는,성깔있는 전형적인 ‘경상도 아줌마’ 스타일이었는데 자신의 결벽증에 배반의 상처가 깊게 남아 쉽게 아물는지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필자도 결혼한 사람이다.사람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이성에 끌리고 또 관심을 쏟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이들 부부를 보면서 미묘하고 어려운 사회적 삶의 기교,그리고 그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확고한 가치기준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됐다.믿음이 클수록 어긋난 신뢰관계의 폐허가 참담하기 때문이다.나는 그 폐허가 무섭다.
김영철 선릉 힐비뇨기과 원장
“선생님,글쎄 이 인간이 바람을 피워 나한테 병을 옮겼다 안캅니까? 고 3짜리 자식 키우느라 정신이 엄써 인제야 알았습니더.관계만 하면 온몸이 후끈거리고 치밀어 오르는 게 성병을 옮아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자는 첫 마디부터 히스테리 징후를 보였다.관계후 몸이 가렵고,가슴의 살이 터지고,명치 끝으로 뭔가 치밀어 오른다는 등 두서없이 주워 섬기는 얘기를 10분이나 들어야 했다.
여자를 진정시킨 뒤 남자하고 얘기를 나눴다.남자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할말이 없습니다.제 일이니까 다른 건 신경쓰실 것 없고,검사나 좀 해주십시오.” 이런저런 변명도 없이 시종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에이즈와 성병 검사부터 실시했다.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질병이 없는 상태였다.여자에게 결과를 설명하고 남자에게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고 나니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남자는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누군가를 좋아했을 것이고,그 상대 역시 그랬을 터인데,때를 잘못 만나선지 그 사랑은 결국 유치한 촌극으로 끝나고 말았다.그 여자 역시 남들보다 더 열심히,그리고 성실하게 살려는,성깔있는 전형적인 ‘경상도 아줌마’ 스타일이었는데 자신의 결벽증에 배반의 상처가 깊게 남아 쉽게 아물는지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필자도 결혼한 사람이다.사람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이성에 끌리고 또 관심을 쏟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이들 부부를 보면서 미묘하고 어려운 사회적 삶의 기교,그리고 그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확고한 가치기준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됐다.믿음이 클수록 어긋난 신뢰관계의 폐허가 참담하기 때문이다.나는 그 폐허가 무섭다.
김영철 선릉 힐비뇨기과 원장
2003-11-1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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