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그린에세이] 번호판 시리즈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번호판 시리즈

김영두 기자 기자
입력 2003-10-28 00:00
수정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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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를 함께 한 A씨는 아내를 부를 때 ‘허니’니 ‘스위트 하트’니 이런 징그러운 호칭을 쓴다고 한다.

“좀 지나치지 않아? 결혼한 지 20년도 넘은 부부가 아직도 그렇게 불러? 옆에서 듣는 데 소름이 돋잖아.”

친구들이 핀잔을 주었다.

“실은 말이야.몇 년 전부터인가 마누라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A씨의 변명이다.너무 가까이 있어서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것일까,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일까,자주 쓰지 않아서 이름조차 망각에 묻혀 버렸을까,아니면 지독하게 멍청한 것일까.

골프장에서는,장갑을 벗을 즈음에 캐디가 안내방송을 한다.

“골프채 확인하시고,소지품 챙기시고,차번호 말씀해 주세요.”

라운드를 끝내고 골프채를 찾을 때,차번호와 골프채 가방에 캐디가 매달아준 꼬리표에 적힌 숫자가 일치해야만 골프채를 찾을 수가 있기 때문에 차번호를 대라는 것이다.캐디가 챙기라는 소지품은 휴대전화나 담배,지갑 등이겠다.소지품이야 동반자가 챙기고 난 나머지를 다 주워오면 되겠지만,차번호가 문제다.마누라 이름도 잊은 사람이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 번호인들 기억하겠는가.

“내 차번호가 뭐였더라?”

캐디에게인지 나에게인지 모르지만,A씨가 자기의 차번호를 물었다.A씨의 차번호는 내가 기억을 한다.누구나 어렸을 적에,‘에그그 계란 깨질라’ ‘어,그려,동의하지’ 따위로 Egg는 계란이고 Agree는 동의하다란 영어 단어를 암기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그렇게 영어 단어를 암기하던 식으로 외웠다.

“차 팔고 돈 잃어.(차)8915 아니에요?”

“어어? 맞네….나도 내 차 번호는 기억 못해도 당신 차번호는 기억하지.자 빨리 식스나인,(서울 자)8269 맞죠?”

“어찌 알았죠? 식스나인이 급하다고 차 번호판에 써가지고 다녀도 쫓아오는 남자가 하나도 없어서,심오한 뜻을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만….

“제 차는 칠이 삼삼(7233)한 크림색 중형차입니다.”

필드의 물 찬 제비라는 별명을 가진,그래서 늘 의상으로 한몫 보는 B씨가 명품 지갑을 챙기며 말했다.

“전 공치러 오라는 뜻인 것 같은 0755 번호를 단 골프연습장 사장님 차도 봤어요.”

우리의 차번호 얘기를 들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캐디가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2003-10-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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