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광장] 퇴색되는 대학 졸업논문

[젊은이 광장] 퇴색되는 대학 졸업논문

염희진 기자 기자
입력 2003-10-25 00:00
수정 2003-10-2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취업대란.사상 최악의 불황 속에서 취직하기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이제 막 중간고사를 끝낸 대학 4학년생은 대기업의 리크루팅에 참가하랴,면접을 보랴,영어공부 하랴,‘취업고시생’이라는 말을 실감케 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하지만 이들의 고민 속에 졸업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어 보인다.수업을 듣다보면 학기 도중 생기는 곳곳의 빈자리는 취업만 하면 학교에 나와야 할 필요가 없는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웠지만 나오기는 너무나 쉬운 곳,입학은 있지만 졸업은 없는 곳이 바로 지금 대학의 모습이 아닐는지.

졸업을 위해 필요한 논문 또한 마찬가지다.각 대학의 졸업 논문 제출기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취업스트레스는 있을지언정,논문스트레스는 있을 수 없다.졸업을 앞둔 친구와 선배에게 물어보면 졸업논문은 단지 조금 긴 과제물을 작성하는 것에 불과한 통과의례로 여겨지고 있다.

하찮고 귀찮게 여겨지는 논문에 대한 인식은 보통 과제물을 작성할 때처럼 논문을 쓸 때조차도 인터넷이나 다른 과제물을 베끼고 짜깁기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만든다.대학의 분위기 자체도 졸업논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졸업논문 심사에 큰 역할을 맡는 담당 교수의 존재는 유야무야된 지 오래고 논문 심사자격도 일정한 기준이 없어 졸업논문을 못 써서 졸업을 못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따라서 베끼기와 짜깁기를 한다고 해서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저서 ‘논문 잘 쓰는 법’에서 대학논문이 단순히 학사학위를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자신의 개념을 체계화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방법이며 나중에 개인의 삶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굳이 에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논문이란 대학 4년간의 배움과 경험의 결정체이자 이 모든 것들을 쏟아내는 작업이다.하지만 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논문을 작성하는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논문을 위해 취업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

베끼기와 짜깁기로 인해 논문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대학도 졸업 시험이나 졸업 인증제 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그리고 부끄럽지만 내가 재학중인 학과처럼 어학 점수가 졸업의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일도 있다.게다가 이 기준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진다고 한다.물론 이러한 변화는 학위 논문 대신 다른 방법을 통해 대학의 졸업 요건을 강화하려는 궁여지책에서 비롯되었다지만 그 방향이 대부분 취업에 필요한 것에 치우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졸업이란 웬만한 평점과 이수해야 할 학점을 다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아니면 토익점수를 비롯해 취업에 필요한 능력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만 하면 가능한 것인가?

취업용 맞춤 동아리가 높은 경쟁률을 자랑할 정도로 지금의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학원이 되어 버렸다.그러나 그렇더라도 대학의 마지막 관문인 졸업까지 이런 현실에 내맡길 수는 없다.학문의 상아탑이 취업 양성소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졸업의 진정한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염 희 진 성균관대 신문사 前편집장
2003-10-25 1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