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골품제와 강남 아파트

[마당] 골품제와 강남 아파트

하응백 기자 기자
입력 2003-10-15 00:00
수정 200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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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서울의 K대학에서 교양 강의를 하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한국 사회에서 학벌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이것은 신라시대의 골품제도와 다를 바 없다.서울대 출신은 성골이다.연세대나 고려대 출신이면 진골이다.자네들은 6두품이나 5두품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발언을 한 이유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어 더 노력하라는 취지에서였다.학기말 시험 때 한 학생이 답안지 말미에 나의 골품제 발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그 요지는 “교수님의 진의는 알겠다.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은 중학교밖에 못 나오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지만 행복하다.교수님조차도 우리 사회의 욕망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니냐.”는 것이었다.그 학생의 말이 백번 옳다.

그러나 요즘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학벌 문제는 한국 사회의 통합과 발전에 발목을 잡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가장 비근한 예가 최근 다시 불거진 강남부동산 가격의 급상승 문제이다.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여러 전문가들은 말한다.정부는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한 정책을 거듭 내놓았지만 그 모든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보유세를 중과하고,아파트 담보 대출을 줄이겠다는 경제부총리의 발표가 있었지만,그것으로 강남 부동산의 가격 상승 추세가 멈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강남 아파트 문제의 근본은 교육에서 비롯한다.

강남에 산다는 것은 자녀들의 좋은 대학 입학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은 학벌 중심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자녀들의 미래에 보다 안락한 삶을 담보해주기 위한 부모들의 가장 큰 자식 사랑이다.그러니 강남으로 강남으로 모여들려고 하는 것이다.이러한 세태를 이용해 투기꾼도 한몫 거든다.자연히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근본적으로는 물론 학벌 사회 타파에 있겠지만,그것이 어디 하루이틀에 해결될 일이고,단기적인 정책으로 가능한 일이겠는가.강남구와 서초구의 인구는 대략 서울시 인구의 10%이다.서울시가 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시장을 포함한 3급 이상 간부 50명(구청 소속 제외)중 15명(30%)이 강남 서초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02년 1월 자료를 보면 서울시 거주 국회의원 170명 중 62명(37%)이 강남 서초구에 살고 있다.(여기에는 한나라당 대표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장·차관 44명 중 17명(39%)이 강남 서초구에 살고 있었다.이것은 물론 지난 정부의 통계지만 현 정부의 고위 관료들의 실제 거주지를 조사한다면 대략 30% 정도는 강남 서초구에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를 움직이는 핵심 세력인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의 30%이상이 강남 서초구에 거주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서초구의 아파트 가격이 왜 상승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아이러니컬하게도 강남 서초구에 주로 사는 사람들이 강남 아파트 값을 잡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형국인 것이다.이들을 강북으로,신도시로,지역구로 강제 이주시킨다면 강남 서초구의 아파트 가격 상승은 의외로 쉽게 멈출지도 모른다.거주의 자유에 반한다는 위헌 문제가제기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왜 이런 허무한 농담을 하는지,왜 이런 농담이 체념과 분노의 갈림길에서 돌출하는지,그 까닭을 나의 골품론에 반기를 든 그 순수한 학생은 이제야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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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응 백 문학평론가
2003-10-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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