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식에서 성화를 점화한 이진택(사진·31)은 6차례나 한국기록을 갈아치우며 아시안게임을 2연패한 한국 육상 높이뛰기의 ‘지존’이다.
지난 3월 국가대표 코치직을 마다하고 고향 대구에서 신생학교 교사직을 선택할 만큼 대구 육상계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이번 대회 성화 점화자로 일찌감치 물망에 올랐다.지난 199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유니버시아드에서 2m32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도 낙점에 보탬이 됐다.
20세 때인 지난 92년 첫 한국기록을 작성한 뒤 기록제조기로 불리며 아시아권에서는 근접조차 힘들다는 세계 높이뛰기의 벽에 도전을 거듭했다.97년 2m34의 한국기록을 세운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지만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저조한 기록으로 초반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이후 왼쪽 어깨 부상으로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야 했다.
운동을 그만둘 뻔한 그는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한 뒤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경북대를졸업한 뒤 한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올해부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구파.앞으로도 전국체전에는 대구 대표로 출전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3월 국가대표 코치직을 마다하고 고향 대구에서 신생학교 교사직을 선택할 만큼 대구 육상계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이번 대회 성화 점화자로 일찌감치 물망에 올랐다.지난 199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유니버시아드에서 2m32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도 낙점에 보탬이 됐다.
20세 때인 지난 92년 첫 한국기록을 작성한 뒤 기록제조기로 불리며 아시아권에서는 근접조차 힘들다는 세계 높이뛰기의 벽에 도전을 거듭했다.97년 2m34의 한국기록을 세운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지만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저조한 기록으로 초반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이후 왼쪽 어깨 부상으로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야 했다.
운동을 그만둘 뻔한 그는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한 뒤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경북대를졸업한 뒤 한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올해부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구파.앞으로도 전국체전에는 대구 대표로 출전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2003-08-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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