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허무속에서 샘솟은 詩心/대한매일 신춘문예 출신 정영주 첫시집 ‘아버지‘

가난·허무속에서 샘솟은 詩心/대한매일 신춘문예 출신 정영주 첫시집 ‘아버지‘

입력 2003-08-14 00:00
수정 2003-08-14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시에 운명을 건 늦깎이 시인의 절절한 노래’

지난 99년 ‘어달리의 새벽’으로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정영주(사진·51)가 낸 첫 시집 ‘아버지의 도시’(실천문학사 펴냄)에는 우울함과 혼돈,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강인함이 들어있다.

연작인 표제시 ‘아버지의 도시’를 비롯하여 56편을 담은 시집은,주로 시인이 직간접적으로 호흡하고 맛본 세 도시를 중심으로 이미지가 펼쳐진다.그 흐름속에서 ‘아버지의 도시’로 대변되는 찌든 가난과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시인의 을씨년스러운 내면 풍경,시적 자아가 성장하면서 맛본 쓰디 쓴 삶의 정경이 등장한다.

시인의 회상은 먼저 동해안의 도시 묵호를 향한다.감성이 예민하던 성장기를 채운 궁핍한 풍경은 시인의 노래를 음화로 채색하게 했다.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밤도 내다 팔아야 했다.”(‘아버지의 도시 2’)는 그 공간을 시인은 “채우지 못한 빈 주머니에 독이 난 아낙들/입에서 허연 거품만 일었다.”거나 “아무리 소금을 뿌려도/펄펄 살아나는 가난”(‘아버지의 도시 5’)으로 회상한다.

시인의 회색빛 추억은 묵호를 벗어나도 변하지 않는다.시집간 도시 광주에서 시인이 맛본 것은 신혼의 달콤한 꿈이 아니라 정치적 폭력이라는 광기였다.그 시절을 시인은 묵호에 빗대서 그린다.“묵호의 대책 없는 바람이 이곳에서 다시 불었다/검은 바다의 그 탱탱 불은 성난 파도가/금남로에 넘실거렸다.”(시 ‘오월의 신부’)

시인이 만난 세번째 도시는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실재하는,허무로 가득찬 ‘안개 도시’다.그곳은 누구나 생의 길목에서 한번쯤 들어가보는 곳인데 시인은 이 벗어나기 힘든 늪을 “오후엔 습기가 천천히 도시를 화장하고/밤이면 이따금 건물도 사람들도 안개에 눈이 멀고 만다.”며 늘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하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이렇듯 힘든 삶의 여정에서 시인을 버티게 해준 것은 시였으리라. 문학평론가 이혜원은 시집 해설에서 “혹독한 가난과 억압과 허무의 무게에 매몰되지 않고 심지를 세우는 그녀의 곧은 정신은 자신의 상처를 딛고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는다.”고 평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2003-08-14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